■■성사 ― 上

1.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유년기의 기억까지 되살려내야만 하겠습니다. 아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리움과 함께 일말의 비통함까지도 수반하는 일이지만 모든 시작은 끝과 연결되어 있고, 끝 또한 시작에 그러하며, 주님께서 안배하신 바는 그 근원부터 시작되는 고로 우리 구도자들은 그 고통마저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나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나는 이곳에서 머지않은, 높이 치솟은 종루가 아름다운 그 도시의 성내에서 그럭저럭 부유한 약제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요즘 시대의 다른 많은 약제사가 그러하듯―약학에 관련된 지식이 그리 풍부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였습니다. 나 또한 아버지를 동경하기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막 걸음을 떼던 시절부터 나는 아버지의 약제소를 드나들며 그곳의 풍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그 눈에 비치는 모습은 어린 소년 하나의 마음을 손쉽게 빼앗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학문의 세계인 동시에 신비의 세계에 속해 있었고, 신앙의 세계인 동시에 미신의 세계에 속해 있었습니다. 낮에는 주변의 상인들과 평범한 농민들이, 늦은 저녁에는 긴급한 환자가 아닌 이상에야 대개 로브를 걸친 남루한 행색의 수도자들이며 학자들이 약제소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시시콜콜한 하루하루의 이야기가 튀어나오거나, 주기도문이나 찬송가와 함께 주님의 은덕을 찬미하는 말이 나오거나 하였지요. 이따금씩 그들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약제사의 아들에게 동방과 서방, 고대와 현재를 아우르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약제소를 찾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물론 아버지가 전 세계에서 공수해온 온갖 종류의 약재였습니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손이 쉽사리 닿지 않는 선반과 장롱 속 각자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비밀스럽게 보관된 각양각색의 병과 자기들. 영롱하게 빛나는 그 색들은 어린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버지도 제멋대로 약방을 돌아다니는 나를 제지하지 않았고, 때로는 작은 나의 몸을 들어 올려 약재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 이름을 직접 이야기해주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약초들과 기이한 색으로 빛나는 약물들, 그리고 그것들을 조합하여 병든 이에게 약을 건네주고, 그들의 등을 쓸어주던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여전히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유년기를 보낸 세계의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어디까지나 그 장소가 지닌 성격이 그러했을 뿐 아버지 당신의 관심은 오롯이 기술로서의 약학에 있었지 신학에도 미신에도 있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그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불온하게마저 느껴질 수 있는 사실이겠으나, 저 멀리 동방에서 온 이방인인 아버지에게 이곳의 신이라느니, 구원이라느니 하는 개념은 제대로 와 닿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삼라만상이니 천신지기니 하는 이교적인 개념이 그의 세계관과 가까웠을 것이나 마찬가지로 이 또한 그의 관심사는 아니었습니다. 다분히 속세적인 인간, 그것이 나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이곳 수도원의 부속학교로 보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제 자식에게 수도원의 우수한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제 자식을 이 신성한 공간으로 보냄으로써 비로소 종교적 세계와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실제 그의 의도가 어떠하였든 간에 결과적으로 나는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이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돌고 돌아 이와 같은 형태를 취하게 되었으니 어찌 이 또한 주님의 안배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때가 되자 아버지와 나는 말을 타고 집을 떠나왔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말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에 콧잔등이 시큰해져 코를 훌쩍였던 기억이 납니다. 익숙한 성곽을 넘어 수도원으로 향하는 몇 시간 동안 자갈돌이 깔린 길을 지나는 내내 아버지의 등을 감싸 안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말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를요. 그렇게 한참이 지나 말하는 것도 지칠 즈음 나는 고개를 돌려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날의 하늘은 유독 맑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고, 그 푸르름 속을 유영하듯 날아다니는 새들은 우리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드문드문 솟아올라 있는 나무며 풀들은 성내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익숙하고도 좁은 도시에 대한 배웅이자 새로운 나날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수도원―그곳은 어떤 곳일까. 분명 엄격하고 힘든 곳이겠지. 아버지는 왜 나를 그곳에 보내시는 걸까.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어린아이가 품을 법한 여러 생각을 떠올리며 그 형상들을 가만히 눈에 담고 있으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갔습니다. 저녁나절이 되자 이 수도원의 상징이자 자랑인 어두운 숲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기름 등불 하나에 의지한 채 숲을 헤치고 저 멀리에서 희미한 불빛을 발하는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겨우겨우 수도원에 도착하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나는 이곳에 소속되었고, 아버지는 하룻밤을 묵고 자신의 일터와 터전이 있는 도시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나는 홀로 남겨져, 유년기를 함께했던 그 신비하고도 이중적인 세계와 잠시 작별을 고하고 수도원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지금 여기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것을 말입니다. 속세와 비교하자면 이곳은 몹시도 정적이며 일관적인 세계라 할 수 있겠지요.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 이곳의 모습을 관조했을 때 자연히 그 모습에서 숭고함과 경건함을 느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습니다.

지금이야 이 견고한 성벽 내부의 곯아터진 모순이며 부조리함이나 그 너머에 존재하는 무엇을 똑똑히 꿰뚫어볼 수 있지만 그 어린 나이에 거기까지 통찰이 미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허나, 말로써 온전히 형상화되지 못하는 본능적인 감각의 차원이라면 또 다른 법.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공간을 감도는 기묘한 불쾌감이나 이질감을 감지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는 않았지요. 이곳에 거하고 학교를 다니며 모든 곳에 존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속의 한결같은 안온함이나 신성함과 함께 모종의 불합리를 느꼈습니다. 신의 말씀을 따른다지만 결국에는 이곳도 불완전한 인간들의 세계. 신앙과 불신, 주선과 죄악. 여전히 세계는 이중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 감각, 그 의심이 나의 유년기─아버지의 약재며 신비로 대표되는 외부의 세계로부터 기원했다는 것 말고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즈음의 일시적인 혼돈과 고민은 약학이라는, 적잖이 마술적인 나의 근원과 종교적 교리를 합치시키고 구원의 길을 찾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수도원의 스승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단순한 이단자의 생각이나 어린 아이의 치기 어린 의심으로 규정하고 꾸짖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이는 내게 적절한 대답이 되어주기는커녕 불명예스러운 일이 될 것이었고 나는 그런 일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것은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심상조차 아니었으니. 무엇을 어떻게 설명하고 또 질문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내가 인간을 의심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감히 신을 의심하는 것인지조차 명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무엇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의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도 역시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고작해야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인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감각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명확했습니다. 나는 무지한 동시에 연약했으니 두 가지 중 어떠한 세계에도 완전히 가 닿고 속할 수는 없었던 탓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곧 이 불온한 감각을 마음 속 깊은 곳에 파묻어둔 채 현실과 학문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오랫동안 잊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한 번 움튼 의심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었고, 그 원죄는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의 삶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앞서 말한 수도원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느낀 형용하기 어려운 의구심과는 별개로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생활 자체는 그럭저럭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학문에 대한 욕구가 숨통을 틔워준 덕이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수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학생들의 나이에 비해 너무나도 엄격한 수도원의 규율이라든가 체벌은 스승들 몰래 우리들에게서 온갖 불평과 탄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허나, 그대도 알다시피 적절한 처신은 나의 오랜 장기이지요. 각지에서 몰려든 여러 계층의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도, 선생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도 다행히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 나의 적이 될 만한 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벗이 될 이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약아빠진 어린아이였고, 그런 내가 보기에 수도원의 사람들은 어른이든 아이든 따분하고 예상 가능한 이들로 그들 개개인은 나의 흥미를 돋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에 대한 나의 호의나 학문적인 수혜에 대한 감사와는 별개로 말이지요. 나는 선생들과 또래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역학관계를 파악하고 때로는 이용하기도 하면서 그 폐쇄적인 사회 속의 은근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자유는 나로 하여금 약간의 일탈을 시도할 수 있게 허락해주는 한편 학문적인 자유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그 질은 과연 저 멀리 도시에서부터 이 먼 곳까지 찾아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더군요. 지루하고, 가끔씩은 경멸스럽기도 했던 동급생들과 달리 배움의 과정은 제법 흥미로웠고 나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신에 의해 창조된 아름답고도 정교한 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수많은 방법들! 비록 그 모든 설명들을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불충분하거나 비약이 심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나의 인식의 토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의심의 결과, 즉 무지로부터 벗어나려던 노력도 나를 그 세계로 떠밀었습니다. 내가 열정적으로 학업에 임하자 선생들은 몹시 흡족해하며 내가 일부 고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기까지 했습니다. 덕분에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학문에 천착할 수 있었지요.

아, 만일 당신과 같은 이라면 엄숙하고도 절대적인 그 가르침에 감히 의심이나 경멸감을 품었다는 사실 자체에 죄악감을 가지고 다시는 그 미지와 어둠으로 가득한 세계에 말을 발을 들이밀지 않았겠지요. ―나도 그렇게 행동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 원죄를, 뿌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면 이후로 그토록 많은 지독한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아,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나 버렸습니다!― 허나 괴롭기 그지없게도,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이상한 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에 속했으며, 불안감이라면 모를까 죄악감을 가질 만한 일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방황하는 어린양이었을 뿐이었고, 스스로가 이단자라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단자라니요! 내가 가는 곳 어디에나 주님의 말씀이 있었고, 찬송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 음성, 그 음성들은 언제나 나를 신앙과 찬미의 세계에 붙잡아두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고,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저 늘 신비와 신앙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그 모든 것이 나의 평범한 일상을 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정결하게 씻고, 빵을 먹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때로는 책을 읽기도 하며,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땅 위에 싹트는 온갖 풀들과 이따금씩 거기 섞여있는 약초들의 이름을 읊조리고, 방의 창가 너머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기도하다가 잠에 드는, 그런 일상 말입니다. 하루의 가장 아쉬운 일이라고는 책을 놓고 왔다거나, 체벌을 받았다거나, 변화하지 않는 단조로운 나날에 대한 싫증밖에 없었던 날들…….

그런 나날이 여러 해 동안 이어졌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