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 ― 上

2.

동급생들에 비해 배우는 속도가 빨랐던 나는 그들보다 몇 해 일찍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입학한 지 한두 해가 지났을 즈음에는 이미 고학년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은 때는 선생들에게 따로 가르침을 받았지요. 선생들은 재능 있는 제자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주고자 노력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그 지식이 곧 이곳의 재산이고 권력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학생 신분에 불과한 내게 알려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극히 일부였다고는 하나 고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은근한 시선을 던져왔는데, 이는 내게 앞으로도 이 수도원에 소속되어 영원히 주를 위해 일하겠노라는 서원을 할 각오가 되어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졸업과 동시에 수도원에 남아 수사가 되기로 결정한 동급생들 중 일부는 정식적인 수련수사로 취급받으며 조금씩 수도원의 시설들에 드나들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렇지 못한 나머지의 학생들은 저들에게 주어진 얼마 되지 않는 미래의 선택지를 저울질해 보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고요. 혹은 그런 고민의 과정조차 거치지 않은 채 이미 결정된 제 삶의 형태를 받아들이거나요.

나로서는 당장에 수사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수도원의 학교를 졸업한 이상, 즉 그곳의 자원을 누리며 은덕을 입은 이상 수도자의 길을 걷는 것이 도리라 하겠으나 그 때의 나는 아직 어렸고 수도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속하여 스스로의 가능성을 구속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그곳이 얼마나 안온한 공간이었든 간에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바로 그러하였기에.

고백하건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이곳 수도원에서 보내면서도 나의 흥미와 관심은 언제나 그 바깥의 세계를 향해 있었습니다. 향락의 추구며 호기심이라는 측면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 시기의 나를 이끌던 추동은 그보다도 오래 전부터 이어진 약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따금씩 나는 학교의 수업이 끝나고 나면 몰래 수도원 본관의 양호실을 찾아가 그곳에 머무르는 본초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마치 자식처럼 대해주고 반겨주었지요. 그곳에는 아버지의 약제소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도 더욱 다양한 약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러하였듯 그들 또한 나에게 약재들 하나하나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들과의 교류는 몹시도 즐겁고 유익했을 뿐더러, 약학과 나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수도원의 학교에서 수년간 양질의 교육을 받은 덕에 겨우 학문의 갈피를 잡을 수 있는 수준이 되자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만일 이 몸을 성직에 바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필시 약학에서 구원을 찾는 형태이리라는 직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소명, 그래요. 소명이라는 말이 적절하겠군요. 나의 소명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을 치유하고 구제하는 것. 한없이 불완전하여 고통 받는 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며,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일! 그것에 대한 추구와 동경은 명백하게 어린 날의 이미지로부터 기원한 것이었고 이제는 학문이 그 믿음을 뒷받침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수도원과 스승들을 뒤로 하고 나의 고향, 내 환영의 온상인 약제소로 돌아왔습니다. 스승들도 나의 선택을 가로막거나 책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내가 잠시간의 방황을 겪고 나면 당연하게도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마치 그것이 예견된 일인 양 확신하는듯했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나 운명과 숙명을 들먹이는 모습만 보아도 그랬지요.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1),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2). 실패보다는 성공이, 비관보다는 낙관이 더 가까웠던 오만한 어린아이인 나는 내심 그들의 말을 듣고 조소했습니다. 허나 결국에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그대와 마주보며 그 날의 일들을 회상하고까지 있으니 어쩌면 그들의 예견이 옳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노라고 이제서야 생각하게 되는군요.

다시 돌아온 도시의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였지요. 내가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활기와 생기가 넘쳤습니다. 골목거리의 상점들 하나하나며 그곳의 주인들마저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 안으로 들어서고 나니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느껴졌습니다. 부모님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짙어져 있었고, 갓난아이였던 동생들의 키도 훌쩍 자라 있었지요. 가족들은 그동안 서간문으로만 소통하다가 수 년 만에 돌아온 소년 혹은 청년의 모습을 보고 조금쯤은 낯설어 했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의 귀환을 반겨주었고, 나 또한 그들과의 재회가 반가웠습니다.

귀환의 의례가 끝나자 나는 다시 가정과 약제소에 소속되어 아버지의 일을 도왔습니다.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나에게 약재에 대한 지식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본초학적 지식을 비롯해서 제약과 관련된 지식까지 그 영역도 내용도 다양했습니다. 그 시기 우리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식이라기보다는 약제사와 도제의 관계에 가까웠겠습니다.

세간에서는 질병이란 악마로 인한 것이며 약제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그 악마를 퇴치하는 일이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글쎄요. 수많은 환자들에게서 내가 본 것은 보이지 않는 무엇으로 인해 촉발된 고통에 휩싸인 채 부르짖으며, 신을 찾으며 죽어가는 나약한 인간뿐이었습니다. 알 수 없지요. 알 수 없어요! 눈이 가려진 우리들이 감히 무엇을 제대로 지각하고 볼 수 있겠습니까. 설령 진정으로 악마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성수며 성유물이 그들을 치료하고 구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옳으며 가치 있는 것이겠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만, 만약 그와 반대로 악한 것, 이를테면 마술적인 것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옳으며 가치 있는 것일까요? 짓궂은 농담만은 아닙니다. 약학을 조롱하는 이들이 꺼내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잖습니까. 약학과 마술은 그 근원에서 맞닿아있다, 그러니 약학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이단자들에 불과하다고.

그 근원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를 위해 미루도록 합시다. 지금은 앞서 말한 의문에 대한 나의 답이 언제나 ‘그렇다’였다는 사실만이 중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신체의 구원과 영혼의 구원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다고 감히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한 쪽의 구원이 다른 쪽의 구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까? 진정한 구원은 고난 속에서도 빛을 바라보며 굽히지 않는 자를 위한 것이라 하지만, 썩어 문드러지는 몸을 안고 저주의 말을 쏟아내는 이에게도 치유와 구원의 기회가 주어져야 옳지 않습니까? 지고의 성자이신 주님께서는 그 옷깃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병자를 구원해내는 기적을 보이셨다지만 우리는 성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자 되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에게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필요할 것입니다. 모든 병자들은 기적을 바라지만 그들의 앞에는 좌절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진정 눈앞의 중개자이자 기술자인 인간뿐입니다! 그 자가 성聖의 영역에 있든, 마술의 영역에 있든 말입니다. 언제까지고 고개를 쳐들어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지라도 손은 땅을 향하고 있는 인간만이!

이런, 조금 흥분했군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 그대도 알다시피 지난날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고통스러웠고…… 나는 그 한없는 고통과 고독 속에서 영혼의 눈과 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나의 길을 밝혀주던 지성마저도 바람 앞의 등불과 다를 결이 없습니다.

…….

나를 동정하여 주는가요. 그대의 고결한 성품에는 몇 번이고 감사만을 하게 되는군요. 그래요, 좋습니다.

우선은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게 좋겠군요. 조금 전 이야기한 이른바 사특한 생각들을 감히 마음에 품었다 하여 내가 종교적인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조롱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술과의 경계가 흐릿한 약학에의 관심과 종교에의 반발 혹은 냉소를 등치시켜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나의 인생에 있어서 그 두 가지, 주술-약학과 종교는 상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무엇도 쉬이 배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요. 저 너머의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나는 수월하게 아버지의 일을 도왔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일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온갖 잡일을 돕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언젠가 부터는 아버지가 나에게 실질적인 업무까지도 맡겨왔습니다. 어느덧 직접 환자를 진찰하고 약재를 조합하여 그에게 맞는 약을 처방하는 데에도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곧 약제소를 물려받아도 되겠다는 말까지 들었지요. 여기에는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록 약학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을 배울 수는 없었지만 체계를 지닌 학문을 배운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지요.

그렇게 약 이 년이 지났을 즈음 의·약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수도원에서나 성내의 거리에서나 볼로냐 혹은 살레르노에 위치한 대학에서 우수한 의학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앎에 대한 욕망과 약학에 대한 소명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자연히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욕망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조기졸업 이후 약제소에서 보낸 시간 덕분에 앞당겨진 시간대도 제자리를 찾아 마침 일반적인 학령기에도 맞아떨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운명적인 이끌림이라고 할까요. 그것이 나의 의지로 인한 것이든 절대적인 우연성에서 비롯한 것이든 말입니다.

나의 일생을 결정지은 사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중 첫 번째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곳 수도원으로 향했던 것, 두 번째는 바로 볼로냐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선택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자신의 업을 자랑스럽게 여겼지요. 학비를 비롯하여 충분한 경제적 지원까지도 약속해주었습니다. 어머니나 동생들은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먼 여정을 떠나는 내게 걱정과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응원해주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끌어안고, 입 맞추며 다시금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볼로냐의 대학으로 향했습니다. 아, 그리운 나날, 그리운 장소여. 그곳이야말로 진정 나의 삶이 시작된 장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M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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