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오랜 여정을 거쳐 도착한 대학의 모습은 모든 면에서 새로웠습니다.
내가 떠나온 고장도 제법 번화한 도시였지만 볼로냐에 견줄 바는 아니었습니다. 볼로냐에 비하면 그곳은 차라리 시골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거대한 성채 내부에 우뚝 솟아오른 탑들이며 온갖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도시의 모습과 인파─그리고 악취─에 경악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대학도시라는 말이 정말 꼭 맞더군요. 아직 학기가 시작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회 부지 근처는 물론 도시의 모든 곳에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나이도, 복장도, 심지어는 국적도 전부 달랐습니다. 유럽 각지뿐만 아니라 아라비아를 비롯하여 동방에서 온 듯한 이들도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열띤 토론을 나누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상인들과 드잡이질을 하며 행패를 부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언제나 은근하게 전제되어 있던, 모든 것이 영원히 고정되어 있을 것만 같던 감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무언가가 새롭게 변화할 수 있으리라는 격동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무언가가 시작되리라는 예감. 이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가요.
대학생활에 적응하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수도원에 적응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지요. 이곳과는 달리, 그곳에는 자유가 있었으니까요. 학우들과도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재치가 있었고 학문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습니다. 오로지 학문만을 위해 전 세계에서 이곳까지 찾아온 이들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들은 교회면 교회, 민가면 민가,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토론이 뒤따랐지요. 심지어는 술집까지도요.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아퀴나스에 대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메로스, 헤로도토스와 히포크라테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현세에서 육신을 잃고 잠든 이들이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금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볼로냐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그 이야기의 수만큼 많은 화자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M이었습니다.
M─나는 아직까지도 그를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좋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이래로 지난 수십 년 간 그를 묘사할 수 있는 말을 찾아왔지만 어떻게 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언제나와 같은 지극한 경애와, 그리움의 마음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처음 M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막 첫 학기가 시작되었을 즈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첫 번째 수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학당에 들어와 있었는데, 어떻게 봐도 결코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요. 나와 마찬가지로 극동에서 온 듯한 외양에, 한편으로는 그리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키, 짙은 눈썹과 날카롭고도 또렷한 눈매, 오똑한 콧날의 미려한 조화가 만들어낸 준수한 외모가 그 청년을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그 외에도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외모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유무형의 무언가가. 학당에 들어서는 이들 모두가 한 번씩은 그를 눈으로 좇았으며, 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한 요소들로 인한 이끌림은 물론이고, 나는 그에게서 이방인으로서의 동질감과 그로 인한 반가움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흥미로운 이였지요. 절로 그에게 관심이 갔습니다. 수업이 이루어지는 동안 교수의 말을 듣는 한편 앞자리에 있는 그를 슬쩍 눈으로 좇았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 사람들이 건물에서 빠져나갈 즈음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L이라고 합니다. 중부에 있는 S수도원에서 왔지요. 당신은? 아마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맞나요? 지난 며칠 간 성내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당신 같은 사람을 본 기억이 없거든요. 야아, 그 얼굴을 보았다면 분명 잊었을 리가 없을 텐데요!”
M은 잠시간 빤히 나를 바라보더니,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나의 물음에 대답했습니다. 차분하고도 흔들림 없는 어조로.
“M. 이곳에서 멀지 않은 소도시에서 왔습니다. 당신 말대로, 어제 막 이곳에 도착했어요.”
“그렇다면 이탈리아인인가요? 동방에서 왔을 줄 알았는데.”
“글쎄, 어떨까요. 당신은 S수도원에서 왔다고 했는데, 마찬가지인 상황 아닐런지.”
“나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이주는 아버지 대의 일이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혼혈은 아니지만……. 여하튼, 이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자주 어울릴 수 있으면 좋겠군요! 음,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서로 편하게 말하는 건 어떨까요? 나는 올해로 열다섯이 됩니다.”
내가 손을 내밀자, 그는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작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습니다.
“나쁠 건 없지. 어쩌면 이 또한 신의 안배일까. 나도 올해로 열다섯이 돼.”
“동갑이라니! 이거 정말 반가운걸.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해. 아차,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그렇다면, 다음에 봐!”
그렇게 말을 트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내가 곧바로 친해져서 지금과 같은 사이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학우들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마주치면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에 불과했지요. 그는 말수가 많진 않았지만 좋은 이야기상대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는 놀랍도록 총명했고 그의 견해며 수사법은 다소 문제적이기는 해도 흠잡을 데 없이 빛났습니다. 독보적이었지요! 수업이 이루어질 때 그의 모습이란 한층 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제기된 의문에 대한 토론과 결론에 이르는 과정 모두가 한없이 매끄럽고 완벽했습니다. 몇몇 교수들은 그와의 토론을 드러내놓고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그에게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그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보일수록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갔고, 그가 입을 열지 않는 만큼 그를 둘러싼 소문 또한 무성해져 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과 흥미에서 시작했던 것에 동경과 경외, 시기와 멸시의 감정이 덧입혀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요. 누군가는 그를 두고 선교사의 사생아라고 하는가 하면, 귀족의 후원을 받는 상민의 자식이라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또 누군가는 그를 두고 음울한 냉소주의자라고 하면서도, 다른 누군가는 멜랑콜리에 사로잡힌 몽상가라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더러운 소문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가 음해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지요.
그 모든 것이 헛된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냉소주의자며 몽상가를 만나왔지만 그는 그 무엇과도 달랐습니다. 그는 허위와 어둠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진실로 빛을 바라볼 줄 아는 이였습니다. 신과 신이 빚어낸 이 세상을,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이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고 또렷하게 빛나는 두 눈은 확실한 목표를 바라보고 그것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보는 목표를, 시야를 나는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었고 아직까지도 제대로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인력을 느꼈습니다.
M에 대한 소문들 중에서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것이 있다면, 어느 교수의 수업이 M에 의해 완벽하게 논박 당했고 학생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는 류의 소문뿐이었습니다. 음, 그건 확실히 사실이었겠지요. 몇 번인가 내가 실제로 목격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교수에게 가엾다는 감상을 갖는 건 그리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M은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 일일이 해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 워낙 익숙한 것도 같았거니와 때로는 저에 대해 어떤 소문까지 만들어지는지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저 그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떨어진 채 인세를 관조하며 언제나 확고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그의 출신에 대한 터무니없는 소문을 듣고 하도 어이가 없던 나머지 M 본인에게 들려주기도 했는데, 소리를 내며 웃더군요. 이런, 실례. 그는 양해를 구하면서도 슬쩍 내게 그런 소문들을 믿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대답하지 않는 이상 모든 말들이 참인 동시에 거짓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그대가 아니라면 주님만이 진실을 알고 계시려나?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적어도 지금 돌고 있는 소문들은 자네라는 인간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감상이 들어.”
그는 내 말을 듣고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됐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그것은 무엇에 대한 대답도 되어주지 못할 의뭉스러운 말이었지만 그 이상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와 나 사이에는 미묘한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베일과도 같은 무언가가 우리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지요. 언젠가 그것을 넘어서는 때가 오면 어련히 그 스스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리라 생각했습니다.
학기가 진행되고 학문의 과정이 심화될수록 그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들도 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텍스트를 이해하고 암기하고 수업을 따라가며 시험에 응시하느라 바빠서 가십이 문제가 아닐 지경이 온 겁니다. 나의 경우에는, 이 수도원의 명망 있는 스승들이 선물해준 훌륭한 교육 덕에 기본 교육과정을 따라잡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을 관찰할 만한 여유분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지요. M은 여전히 독보적인 재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경외면 경외, 시기면 시기로, 그 즈음에는 그에 대한 평가도 나름대로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명백히 전자에 속했습니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의학부를 염두에 두고 이 학교에 들어왔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더욱 그에게 이끌렸습니다. 우리 둘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고, 점점 서로와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