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 ― 上

5.

나는 본래도 대학에서의 생활에 제법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무테이라는 평생의 친우가 생기고 난 이후에 어떠했을지는, 쉬이 짐작이 가겠지요. 참으로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무테이는 워낙에 차분하고 과묵한 편이었기 때문에 보통은 내가 그를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모습이 연출되었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그와 보내는 시간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고도 남았지요.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가 던지는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해석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교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보다도 많은 것을 그와의 대화나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온갖 사건의 온상인 대학에서 보낸 수년간 기꺼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허나 나와 무테이는 대개 그런 일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곤 했습니다. 이따금씩은 우리도 사적 혹은 공적인 사건들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대개는 평온한 일상이 이어졌지요. 마음 속에 어떠한 두려움도, 머뭇거림도 머무를 자리를 내주지 않고 다가올 찬란한 내일만을 기대하던 나날이었습니다. 나뭇잎은 지더라도 다가올 겨울을 이겨내고 또다시 새로운 싹이 움틀 테고, 우리들의 발자국도 분명 그만큼 앞으로 나아가리라고요.

그럼에도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니, 그렇게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만 같았던 교양학부의 과정에도 어느새 끝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들의 나이도 이십줄에 접어들었지요. 나는 물론 의학부에 진학할 예정이었고, 무테이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이 좇을 수 있는 지고의 학문은 신학임에 틀림없다지만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그 하위에 존재하는 의학에 있음이 명징했습니다. 그것은 그와 나를 연결해주었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우리는 세상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있다면 의학에도 그러할 것이며, 또한 의학을 통해서라면 분명 내세뿐만 아니라 현세의 인간도 직접적으로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볼로냐 대학의 의학부는 지방의 일개 수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시로, 의학부를 전공하는 우리 학생들의 목표이자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교수들의 목표는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히포크라테스로 회귀하는 것─그대에게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나 지금이나 우리는 오로지 신의 사랑을 따르기 위해 의학에 투신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기를─이었습니다. 교황청의 인가 하에 실제 시신을 해부하는 수업이 이루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그곳의 분위기에 대한 설명이 되겠지요. 해부에 사용되는 범죄자의 시신을 매일같이 구할 수도 없는 일이니 해부는 매우 드물게 이루어졌지만 그럼에도 그 경험 자체가 주는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해부 수업에 대한 소문은 이전에도 익히 들은 기억이 있었지만 실제로 목격하게 되니 생각보다도 더 놀랍고도 흥미롭더군요. 아무리 죽어있다고는 하나 인간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지요. 무테이 또한 강한 인상을 받은 모양이었습니다. 해부가 이루어지는 동안 그의 눈은 번득이며 쉬지 않고 그 과정을 좇았습니다. 마치 망자의 피와 함께 흘러나오는 모든 지식들을 탐욕스럽게 받아들이려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니 그가 의학과정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나 또한 그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대학 내부에서 실질적인 해부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에 뒤따르는 수업의 질도 우수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정확한 인체의 구조나 그 작동방식에 대해 효과적으로 학습하고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어요. 내장기관이나 골격의 형태, 변이를 그곳이 아니고서야 어디에서 직접 이 눈으로 관찰할 수 있었겠습니까.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희열은 무엇과도 쉽게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허나 아쉬움도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분명 실습은 혁신적이었지만 이론적인 내용들은 여전히 대개가 천 년도 넘은 갈레노스의 의학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한 철학자이자 의학자였고 그가 남기고 간 유산 역시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지만 우리가 해부와 진찰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본 인간의 생리작용과는 괴리가 있었습니다. 교수들 또한 이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눈이 가려진 그들은 현실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찾아나서는 것 대신에, 선현의 가르침이 틀렸을 리 없다는 헛된 믿음 하에 그 어긋난 과거의 이론에 제가 직접 관찰한 바를 도리어 끼워 맞춘 채로 눈을 돌렸을 뿐이었습니다. 이미 구원에 이르는 방법으로서 의심을 선택한 우리의 눈에 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뻔한 일이었지요. 그들이 고루한 과거의 이론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실질적인 연구에 대한 우리들의 열망은 커져만 갔습니다.

이쯤에서 또 다른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당시 볼로냐의 의학부에는 북부의 에어체룽그 공국에서 온 저명한 학자가 근속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페이터 랜들로, 다들 랜들 선생이라고 불렀지요. 으레 천재라는 이들이 그렇듯이 괴짜라면 괴짜였지만 상당한 인격자였고, 무엇보다도 의학적인 지식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습니다. 대학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전 유럽에서 그 이상 가는 의학자가 없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게다가 외과의로서의 실력마저도 출중했지요. 해부학 수업이 이루어질 때면 멀리서 뒷짐만 진 채로 보조교수의 실습을 바라보면서 훈수나 두던 다른 교수들과는 달리 그는 직접 실습을 집도하며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시신이 공수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당장에 학생들을 데리고 달려가서 수업을 시작하기도 했지요. 그러니 걸핏하면 교수들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곤 하던 학생들조차도 그에게만큼은 깊은 존경을 표하고는 했고, 심지어는 오로지 그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그를 따라서 이 대학으로 온 이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는데, 갈레노스의 이론을 포함한 기존의 이론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몇 번이고 실습의 중요성을 역설하곤 했습니다. 세간에서는 외과 시술을 천하게 여기지만 인체의 구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불가능하다면서요. 물론 그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대학에서도 최대한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하더라도 교회나 주류 학계의 감시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니 그 시도에도 한계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랜들 선생에 대해서도 암암리에 수많은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독보적으로 두드러지는 능력에 비해 개인적인 내력에 대해서는 워낙에 밝혀진 게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겠습니다. 무테이의 경우가 그러했듯이요. 흥미 본위의 단순하고 허황된 풍문에서부터 노골적인 의도가 보이는 더러운 소문들까지 그 내용도 다양했습니다. 가령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 교수는 성내에 비밀스러운 방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부랑자를 데려다가 인체실험을 한다더라, 아니다, 실험이 아니라 마술사의 비밀의식이라더라,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도 있다더라……. 절대다수가 귀를 기울일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었지만, 그 중 몇몇은 진실임직 한 것도 있더군요. 특히 그의 문제적인 혈통이나 오토마이어 가와의 은근한 유착관계에 대한 소문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였을 뿐이고, 차라리 그보다 중요한 것은 또 다른 소문 쪽이었습니다. 그것의 진위여부에 따라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바도 확연히 달라질 것이었기에 우리는 그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면밀히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무테이와 나에 대한 평판은 제법 좋은 편이었던지라 우리는 해부학을 비롯한 일부 수업에서 보조 역할을 맡아 교수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정작 랜들 선생은 유독 경계심이 강한 편이라 그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그의 거취마저도 정확하지 않아서 수업이 이루어질 때나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쉽지 않은 의학 수업을 따라가는 한편으로 그가 쓰는 어휘나 이론의 경향성까지 해석하고 있으니, 때때로는 내가 의학도인지 아니면 탐정이나 기호학자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테이는 아닌 척 해도 꽤나 즐거워보였습니다. 나도 그런 과정을 아예 즐기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그야 워낙 다양한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즈음에는 무테이도 나와 같은 임대방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의 책상 위에는 빼곡한 글씨로 정리되어 있는 의학 이론들에 대한 글과 함께 다양한 기호들로 쓰인 온갖 분야들에 대한 단상들이 놓여 있곤 했습니다.

우리의 노력도 헛되지는 않았는지 조금씩 결실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나와 무테이는 문제의 소문을 비롯해서 선생의 진실에 조금씩 접근해가고 있었고, 랜들 선생도 차차 우리에게 신뢰를 보이며 마음을 여는 모양새였습니다. 고지가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남은 것은 계기뿐이었습니다.

하루는 잠에 들기 전에 슬쩍 고개를 돌려, 반대편 침대에 누워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무테이에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랜들 선생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

“무슨 의미에서?”

“자네도 잘 알잖나. 그가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야. 물론, 나는 자네의 인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마는.”

무테이는 나의 말을 듣고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이어 대답해왔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람이지. 훌륭한 학자고. 이 대학에서 너와 나를 제외하고 진정 생명력을 지닌 사람을 고르라면 그 한 사람 뿐일 거야.”

“그렇다면,”

“이미 학문적인 측면에서 그는 훌륭하게 우리를 인도해줬어. 아쉬운 바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가 기대를 걸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오히려 다른 쪽이겠지.”

“다른 쪽이라면 역시, 그 소문에 대한 이야기인가?”

“음. 우리도 그동안 준비를 안 해둔 게 아니니까, 그도 직감한 바가 있지 않겠어. 몇 년 전 너와 내가 그러했듯이. 뭐,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신의 안배는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의 이 예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현되었습니다.

운 좋게 범죄자의 시신을 구해 랜들 선생의 집도로 해부학 수업이 진행된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시신의 상태도 좋아 아직 썩지 않은 내장기관의 형태를 세세히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해부작업을 보조했고, 무사히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그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공간에 남아 뒷정리를 도왔습니다. 어느 정도 핏자국이 갈무리되었을 즈음 무테이가 다른 수업을 듣기 위해 급히 떠나가자 얼마 되지 않아 선생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의미 없는 신변잡기적인 내용뿐이었지만 대화가 오고갈수록 자연스럽게 의학과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로 그 주제가 바뀌어갔습니다. 어째서 의학도의 길을 걷고자 하는가, 의학의 근본이란 무엇이며, 의학을 통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야기의 물길이 흘러가며 내가 이곳 지방의 약제사의 아들이라는 데까지 도달하자, 그는 무언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흥미를 보였습니다. 이제 대화의 주제는 의약 쪽으로 넘어갔고, 대화가 한참동안 이어졌습니다. 어느 순간에 미치자 드디어 본론을 꺼내들더군요. 시험이 끝난 것이었죠. 그는 물었습니다.

“자네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아스클레피오스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바로 그 구원을 위해서 헤르메스의 제자가 될 의향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그가 바로 그 말을 건네는 순간만을 기다려왔으니, 그에 대한 대답 또한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리하여 무테이와 나는 의학이라는 명시적인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은밀한 영역에서도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대도 어느 정도는 이미 짐작했겠지요. 그의 제자가 됨으로써 우리는 본격적으로 마술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마술이란─그래요, 죄악이지요. 연금술, 카발라, 주술과도 같은 삿된 것들. 허나 그것들은 나와 그를 연결해주는 원죄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구도의 길을 좇고 있었는데도 근원적으로는 죄악으로 연결된 관계였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때의 나는, 우리는 그것이 진정한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치기와 열정이라는 달콤한 꿈에 취해있었고, 이 또한 신의 안배를 따르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나는 마술사의 피를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인자因子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까요. 앞서도 말했지요. 약학과 마술은 그 근원에서 맞닿아있다고. 참으로 맞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약제사-마술사의 피를 이었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약방을 오가는 이들에게서도 그 신비의 일면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나에게 들려주던 갖가지 이야기들 중에는 고대의 비술에 대한 것도 있었습니다. 저주받은 피를 타고난 나는 그때 이미 간단한 마술을 부릴 줄 알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이 이 시대에는 허락되어 있지 않은 능력임을 깨달았지요. 아버지의 경우에는, 당신 본인은 마술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으나 나에 대해서는 혹시나 그 이단의 능력을 지니지는 않았을지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종교적 신념이라고는 없는 그 세속적인 인간에게 마술은 어디까지나 숨겨야 할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탄압하지도 심판하지도 않을 테니 그런 능력이라고는 타고 나지 않은 것처럼 죽은 듯이 살라는, 일종의 방치에 가까웠을까요. 허나 그 덕에 나의 근원을 드러내놓고 보일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스스로 부정하지는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이라는 이 정결한 장소에 속하게 된 후로는 명백히 억압하고 부정해야만 했지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말입니다. 아무리 내가 성과 속의 영역 모두에 속해 있었고, 또 계속해서 그러기를 바랐다고 하더라도 마술을 비롯한 이교적인 것은 무조건적으로 문제적이며 부정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인의 감시에서 벗어나 마술을 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고요. 그러니 나로서는 본초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간신히 근원과의 연결점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 주박은 이곳을 벗어나 아버지의 약제소로 돌아가고 나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가 추구하는 기술로서의 약학에는 단 한 번도 감히 의심의 눈길을 보낸 적이 없었으나 마술에 대해서는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마술사로서의 정체성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누군들 자신의 근원을 부정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겠습니까.

그렇게 수 년. 나는 방랑의 길의 끝에서 무테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를 보고 느꼈을 충격을, 그 경외를! 그는 모든 것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러하였듯 나에게도 두 눈을 가리던 베일을 벗기고,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말입니다. 그것은 명실상부하게, 바로 이 인자로 인한 것이었지요. 이 인자로 인해 내가 그와 함께하고, 진정한 구원을 향한 여로에 설 수 있게 되었다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랜들 선생은 그 조력자가 되어주었지요.

이 불안과 혼란의 시대에마저 신실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이에게 마술의 덕성이며 효율성을 이야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그것이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한 것이기에 선택했던 게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비록 필요악일지라도 신의 길을 따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편에 가까웠지요. 이런 사고조차도 변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당신도, 그리고 나도, 아무도 원하지 않을뿐더러 의미도 없는 행동이 아닙니까.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아직 학문과 생명이 살아 숨쉬던 그 시절로.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랜들 선생의 방으로 초대받았습니다. 그곳은 기울어진 탑 근처 골목의 으슥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전형적인 연금술사의 방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 어쩌면 당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에게는 쉬이 상상할 수 없을 만한 장소일지도 모르겠군요. 그 방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화덕이 있었고, 그 주변을 작은 화덕들 여럿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선반에는 색색의 물약과 약재로 채워져 있는 수많은 병과 플라스크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는 자연히 아버지의 약제소를 떠올리게 했지요. 방 한 켠에 자리한 테이블의 위에는 두개골과 함께 인체 일부분의 모습을 본뜬 모형들이 있었습니다. 방에 맴도는 기이한 향취까지 더해서 그 모든 것이 신비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정식적으로 연금술의 대가大家로서 우리의 스승이 되어주었습니다. 우리들은 그의 아래에서 의학의 기초를 닦는 동시에 마술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는 동시에 헤르메스를 따르는 형제들의 서약을 했습니다. 나는 의학의 신 그리고 건강과 모든 치유, 그리고 여신들의 이름에 걸고 나의 능력과 판단으로 다음을 맹세하노라[3]─ 인간은 인간을 낳고, 사자는 사자를 낳으며, 개는 개를 낳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렇게 해서 금은 금을 낳으니, 여기에 모든 비밀이 있도다![4]

그 후로는 매일매일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한 번에 두 종류의 것을, 그것도 그 하나하나가 평생을 걸쳐서 배워도 모자를 만큼 고도로 전문적인 내용인 것을 배우려니 몸이 두 개여도 모자를 지경이었습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교회당에서 의학을, 달이 떠 있을 때는 달빛과 촛불에 의지해 선생의 방에서 마술을 익혔습니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간신히 우리들의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방에 도착해서는 기절하듯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기꺼이 몸을 던젔습니다. 최선을 다했지요. 앞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우리의 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이 너무나도 광막해보였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했고, 나의 곁에는 친우와 스승이 있었습니다. 두려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의 살을 가르고, 뼈를 깎는 한편 동물의 뼛가루를 유황과 수은, 소금에 섞고 불에 태웠습니다. 범죄자의 시신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한편 온갖 광물과 금속,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바쁘게 달렸습니다. 인간이, 동물이, 광물이, 식물이, 그리고 무엇도 아닌 것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오로지 하나의 목표, 바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문득 언젠가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아마도 막 피어난 꽃내음이 감돌던 봄날이었을 겁니다. 무테이와 나는 여느 때처럼 대학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랜들 선생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두 명의 남성이 우리를 스쳐서 그 골목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로브로 가리고 있었지만 분명 보랏빛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한 사람은 평범한 금발의 청년이었는데 이상하리만치 덩치가 컸습니다. 특이한 조합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볼로냐에는 이상한 무리가 차고 넘쳤기에 별다른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테이는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인가?”

내가 그렇게 묻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을 신경 쓰는지 묻고자 했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다시 발길을 옮겨 선생의 방으로 향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수상쩍은 두 사람과의 조우는 시시하게 끝이 났습니다. 곧 그 기억은 우리들 위로 드리운 기울어진 탑의 그림자와 함께 흐릿하게 사라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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