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 ― 上

6.

또다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계절이 돌고 돌아 이제는 몇 번째인지도 모를 봄이 돌아왔을 즈음에는 의학부의 과정도 이미 완료하여 학위까지 취득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한동안 볼로냐에 남아 계속해서 랜들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훌륭한 스승이었고 자신이 터득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전수해주었습니다. 그의 가르침 속에서 우리들은 마술의 오의를 이해하고 연금술의 변성과정에 실제적으로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연금술의 극의─소위 말하는 현자의 돌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데에는 번번이 실패했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들이 목표로 하는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적어도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손에 꼽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확신했습니다. 선생 덕에 우리는 그가 개인적으로 혹은 대학에서 소장 중인 고대의 서적들에 일부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지식에 기반하여 무테이는 흐릿하게나마 세계의 형태를 재인식하는 듯 보였고,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마술의 감각을 되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는, 불온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것의 상태를 바꿀 수 있는 수준은 되었지요.

학문적인 영역을 벗어나 말하자면, 우리 둘 다 그 이후의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그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테이나 나나 집안의 지원을 충분하게 받고 있는 데다 선생의 보조로서의 봉급도 받고 있던 터라 재정적인 어려움은 특별히 없었고 미래에도 큰 걱정은 없었지요. 의학 학위만으로도 어디를 가든 한 자리는 차지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떻게든 굶어 죽을 일은 없었지요. 학문 과정을 조금 더 밟는다면 교수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당장 개업의가 되어 활동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혹은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약제소를 잇거나 수도원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고요.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 한 장이 대학에 도착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형식적인 언사를 걷어내면 내용 자체는 간단했습니다. 이곳 수도원의 본초학자가 더 이상은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어 그를 대신할 수 있을 만한 인력이 필요하다. 마침 본 수도원의 학교를 졸업한 이가 얼마 전 볼로냐의 의학부에서 학위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가급적 서둘러 돌아와(가능하면 그곳에서 구할 수 있는 희귀한 약재까지 함께) 그의 자리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럽기는 해도, 객관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내게 해가 되는 제안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당한 이득임이 분명했지요. 이만한 규모의 수도원에 본초학자로 들어와 연구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고민했습니다. 수도원에 대한 양면적인 감정과 이미 이단의 마술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는 스스로의 처지가 나를 붙잡았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이곳에서의 나날에는 끝을 고해야 함이 분명했습니다. 수도원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곧 속세와의 연을 끊어내야 함을 의미했으니까요.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야 잘 알고 있는 바였으나, 이제 겨우 실마리를 찾은 참인데 벗과 스승에게 작별을 고해야 한다니!

어디까지나 제안의 형태였기에 거절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그것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물론 고향 전체가 수도원에 진 빚이 있었으니 아예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 아닌 이상에야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절로 마음이 복잡해졌지요.

한참을 혼자 끙끙 앓고 있으니 무테이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모양이었습니다. 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하루 종일 함께하는 벗에게는 감추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던 거겠지요. 그가 돌직구로 물어오자 순순히 실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턱을 쓸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습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무테이의 판단을 신뢰했고, 그의 선택이라면 무엇이든 따를 셈이었지만 이 문제는 성격상 마땅한 해답도 존재하지 않으려니 하는 생각에 한숨만 내쉬던 참이었습니다. 순간 그가 툭 던지듯 말을 꺼냈습니다.

“나도 같이 갈게. 그럼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그래. 아니── 뭐라고?”

습관적으로 대답을 하고 나서야 방금 전 내가 상상도 못한 답을 들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귀를 의심하며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있자 무테이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은 다 배웠어. 이제는 슬슬 떠날 때가 됐지. 네가 왔다는 S수도원의 장서에 대한 소문도 익히 들었고. 지난 수백 년간 그곳의 수사들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희귀한 서적들을 수집해 두었다던가. 그곳에서라면 더 효율적인 연구가 가능할지도 몰라.”

나는 신앙심이 그리 깊지는 않고 수도원 생활은 고리타분할 것 같지만, 네가 적응했다면 나도 할 수 있겠지. 이어진 말까지 들으니 그가 단순한 농담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보였습니다. 세상에, 무테이와 수도원이라니, 그 무테이가 수도원을 간다니!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둘이었기에 가능성조차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요! 아니, 한 번 생각의 물꼬를 트고 나니, 어쩌면 생각보다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다시 진심이냐고 물었습니다. 무테이는 한두 번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귀찮아졌는지 귀를 막고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더군요. 여하간 잘 된 일이었습니다! 무테이가 함께한다면 거리낄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곧 수도원 편으로 긍정의 답을 담은 편지를 부쳤습니다. 랜들 선생은 이야기를 듣더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축복해주었습니다. 수도원의 서고에서 괜찮은 책을 발견하면 자기에게도 알려달라는 짐짓 장난스러운 말과 함께요. 분명 그 때 여러 대화를 나누었는데, 무슨 내용의 말을 했었는지. 아무리 수도원이라고는 해도 연락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운이 따라준다면 직접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벼운 분위기에서 작별의 인사를 주고받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와 수십 년 전의 일을 되새기며 후회해봤자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며칠 뒤 답신이 도착하자 무테이와 나는 바로 짐을 꾸려 수도원으로 향했습니다. 짧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혼자가 아니기 때문인지 처음 볼로냐로 향했을 때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고 수고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중간에는 운 좋게 상인 무리와 마주쳐 수레를 얻어 탈 수도 있었지요.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에 그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발길을 재촉하는 낮에도,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그 중 대부분은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몇 가지는 무테이 개인에 대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는 좀처럼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었기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여정은 나에게 있어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했으니, 그도 절로 비슷한 종류의 생각이 떠올랐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무테이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나와 달리 어린 시절 극동에서 아버지를 따라 이주를 해왔다고 합니다. 그 자신은 고작 두어살 무렵이었던지라 거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아마도 그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리라는 이상한 직감이 들었습니다. 지난한 이주 이후에 그는 일전에도 말한 대로 볼로냐 근교의 소도시 F에서 자라났습니다. 가족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었지만 우리 집안처럼 대대로 의학이나 약학에 종사하는 집안은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가족들과의 사이도 그다지 친밀하진 않아 보였지만 대학을 다니는 내내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정도의 사이는 되었던 것 같았지요. 수도원 학교에 진학했던 나와 달리 무테이는 도시 내부에 위치한 문답학교를 다니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나서는 가정교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마도 그가 대학에 오기 전까지 몇 명의 가정교사를 갈아치웠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내의 학교에서든 가정교사든, 무테이 정도의 학생을 감당할 수 있는 이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러다 대학에 갈 만한 나이가 되자 바로 볼로냐로 떠나왔다고 하더군요.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의학을 염두에 두고 진학한 거야? 나야 가업의 영향을 받았다지만 자네는 그런 경우도 아니었잖아. 신학부로 진학하면 여러모로 훨씬 유리했을 텐데.”

“말했잖아. 의학에서 길을 봤다고. 인간의 치유와 구원. 계기는 뭐,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가 영향을 미쳤겠지. 애초에 나는 출세욕도 따로 없으니까…….”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다시 이었습니다.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어. 오히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확신을 가지고 있지. 너는 안 그래?”

다소 생뚱맞은 말이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아니, 나도 마찬가지야.”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짓더니 눈을 감았습니다. 잠에 든 그를 바라보다가 하늘로 시선을 돌리자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의 무리가 보였습니다. 몇 년 전 그와 대화를 나누었던 날 밤, 볼로냐의 하늘이 바로 그러하였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차츰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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