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돌아온 수도원의 모습은 십여 년 전 이곳을 떠나갈 때 눈에 담았던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작은 몸으로 올려다보아야만 했던 것들을 이제는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이 달랐을까요. 저 바깥에서 수십 년이 흐르든 수백 년이 흐르든 이곳에서만큼은 영원히 시간이 흐르지 않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지요.
수도원장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그새 노쇠한 과거의 스승들과 함께 다가와 돌아온 탕자와 그가 데리고 온 새로운 형제를 환영해주었지요. 무테이의 건도 이미 편지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던 터라 상황은 순조롭게 진전되었습니다. 빠르게 인계를 받아, 나는 공석이 된 본초학자의 자리와 양호실의 관리를, 무테이는 번역가와 필사사의 자리를 맡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수사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이방인과 다름없는 우리를 향한 경계의 눈치가 종종 보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눈앞의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는 수도원장의 욕심이 더 강성한 덕에 우리는 별 탈 없이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그 나름대로 학자로서의 욕망도 있었을 것인 데다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겠지요. 당시에는 정세가 워낙 복잡했고 이 수도원 또한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얽혀있던 차였으니까요. 아마 우리가 돌치노파나 카타리파와 같은 명백한 이단자에 속해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우리를 받아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배후에 어떠한 사정이 있었든 간에 아예 예식을 무시할 순 없던 터라 환영의 의례 이후에는 한동안 성소식별과정이 이어졌습니다. 견진성사의 확인이나 성소 모임에의 참여를 비롯해 당신도 익히 알 만한 길고도 지루한 과정이 있었지요. 대학에서의 생활도 어느 정도는 규칙성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곳의 경직성과 비교하면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마저도 약식화된 과정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그리 큰 위안이 되지는 않더군요. 그렇게 지난한 시간을 겪으며 몇 주가 지나서야 서원을 드리고 제대로 수도원에 소속된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수도원에서의 생활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는 하지만 성소 식별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듯 했습니다. 이제서야 본격적인 수도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었지요.
무테이와 나는 이곳에 소속된 후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언제나 함께였던 학생 시절과는 달리 각자가 맡은 업도, 자리한 공간도 달랐으니 당연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우리의 사이는 변함없이 돈독했습니다. 필사실과 양호실이라는 다른 공간에서도 우리는 동일한 목표와 우정이라는 끈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일과가 마무리될 때가 되면 언제나 서로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고, 식사 때도, 미사 때도 우리는 함께했습니다. 때로는 무테이 쪽에서 먼저 양호실을 찾는 경우도 있었지요. 물론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해서는 아니었고, 그가 나와 마찬가지로 의학 학위를 가지고 있는 자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으니 양호실에 보조 인력이 필요하면 늘 그가 동원되는 덕이었습니다. 무테이는 이건 인력 낭비야, 라고 투덜거리곤 했지만, 뭐, 그를 보조로 쓸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니니 나야 좋았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친구로서는 물론이고 공모자로서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 존재하는데, 수도원 같은 장소에서는 특히 그렇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나는 어떻게든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의식적으로 그랬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는 쪽이 맞겠군요. 다행히도 나나 무테이나 각자 맡은 소임은 나무랄 바 없이 해내었던 데다─특히 무테이의 탁월한 학식과 유려한 번역은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대학에서의 생활로 이미 은밀한 행동에는 단련이 될 대로 된 상황이었기에, 이런 노력이 수도원장이나 동료 수사들의 눈 밖에 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이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한 뒤에는 이따금씩 한가롭게 수도원을 거닐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 빛이 많이 바랬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곳 수도원은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그 외부와 내부를 관리하고 있었던 덕에, 적어도 그 외양만큼은 분명한 아름다움을 버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군요. 풍문으로나마 들어보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모습의 십분지 일이나 쉬이 상상할 수 있을런지.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풍경을 어제처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저 너머에서는 이곳 수도원을 혼탁한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자리한 성벽이 그 고풍스러운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예배당에서는 삽화가들과 대장장이들의 뛰어난 재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향로가 제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었지요. 수도원의 가장 안쪽과 서쪽 한켠에 위치한, 이제는 볼품없이 말라비틀어진 중앙정원에는 색색의 꽃과 약초들이 만발하여 당시만 해도 젊었던 우리는 함께 그곳을 거닐곤 했습니다.
정원을 비롯한 수도원의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무테이와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중 상당수는 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수도원의 엄격한 일과를 보내면서도 우리는 원래의 목적을 잊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그 뚜렷한 형상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수도원의 장서에 접근하는 것이었지요.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사서를 찾아가 장서목록을 살피며 도서들의 내용을 연구하고 해석했습니다. 한편 무테이의 경우에는 사서가 있는 필사실에 상주하는 이점을 살려 하루가 멀다 하고 날마다 다른 책들을 빌려보다 못해 아예 장서목록의 내용을 통째로 외우는 지경에 이르렀더군요. 하지만 매일 활발하게 책을 읽고 연구를 하면서도 그는 그다지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시원찮다는 기색이 역력했지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도원의 장서는 과연 훌륭한 수준이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종류의 책은 영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말이지. 분명 고의적으로 숨기고 있는 거야.”
하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일전의 칙령[5]이 있기 전이라면 또 모를까,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마술을 금한 이상 수도원 차원에서 미신적인 서적을 당당하게 빌려볼 수 있도록 허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테니까요. 허나 아무리 그 성격이 불온한 것이라 해도 ─말 그대로─ 책에 목숨을 건 이곳의 수사들이 그것들을 파기했을 리는 없었고, 아마도 장서목록에서 제외하거나 암호화를 한 채로 사서들이 비밀스럽게 관리하고 있었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일단 주어진 자료들을 연구하면서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서들과 은밀하게 접촉하든, 아니면 그들 몰래 도서관에 숨어들어가든 말입니다. 그러나 둘 다 위험부담이 너무나 큰 일이었습니다. 전자는 이곳의 수사들─특히 사서를 쉽게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점에서, 후자는 도서관 자체가 지니고 있는 위험성 때문에서였지요.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도서관에 대해서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잠시간은 욕심을 접어둔 채로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러, 어느덧 우리가 수도원에 들어온 지 반 년가량 지났을 즈음이었습니다. 그날도 나는 종과 미사가 끝나고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에 돌아와 잠을 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막 침대 위에 누우려고 할 때 누군가 방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짤막한 소리일 뿐이었지만 나는 당장에 그 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테이였습니다.
“들어오게.”
그리 말하자마자 역시나 무테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우리의 방은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낮이나 밤이나 몰래 서로의 방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뭔가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잘 보니 종과로부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는 잠옷으로 갈아입기는커녕 여전히 수사복을 입고 있었고, 표정도 약간 상기된 채로 언뜻 장난기며 흥분감이 보였습니다. 그래봤자 남들이 보았다면 무표정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지만, 나는 그의 표정을 읽어내는 데 익숙해진 지 오래였으니 바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의문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그가 대뜸 말을 꺼냈습니다.
“서고로 숨어들어가자.”
“뭐!?”
“쉿. 조용히 해.”
잔뜩 당황한 내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자 그는 그리 말하며 내 입을 급하게 틀어막았습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내가 어물거리고 있으니 손을 떼고는 말을 잇더군요.
“무슨 소린지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장서목록의 해독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어. 하지만 사서들이 어떻게 해서도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으니 원.”
“그래서 결국 숨어들어야겠다는 결론이 난 거야?”
“그래. 싫어?”
“아니! 그럴리가. 하지만 밤에는 탑 쪽에 접근도 못한다는 거 알잖아.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알고 있고?”
그는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양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납골당에 새겨진 해골무늬 중 네 번째의 눈 부분에 버튼이 있고 그걸 누르면 비밀통로가 열려. 방금 전에도 시험해보고 왔어.” 아주 청산유수였지요.
“빨라──! 혼자 들어가지 않은 데에 고마워해야 하는 거야!? 잠깐, 잠깐. 그보다도, 도서관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자네도 알고 있지? 지금 당장은 들어가 봤자 신입 수사 둘만 시체로 발견되고 끝날 수도 있단 말이야.”
“물론이야.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들어갈 수는 없겠지. 그러니 일단 하나하나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고. 그러려고 찾아온 거니까.” 그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듯, 침대로 다가와서는 내 옆에 걸터앉았습니다. “먼저, 아마도 가장 문제가 될 도서관의 미로 같은 구조는 들어가고 나서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까 잠시 치워 두기로 하자. 정 불안하면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도 준비하든가. 다음으론, 아마 가장 중요한 문제일텐데─이곳 도서관에 도는 소문이 뭐라고 했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얘기를 하긴 했지만 나도 걱정이나 죄책감보다는 두근거림이 앞서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직 젊었으니까요. 게다가 바로 옆에 앉은 그로부터 격동이 전염되기라도 한 건지, 순간적으로 치기어린 모험심이 들끓었습니다. 거세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박동을 느끼면서 웃음기 어린 대답을 그에게 건넸습니다.
“도서관이 살아있다, 죽은 수도사들과 악마가 도서관을 지키고 있다, 도서관에 침입한 이는 잡아먹힌다, 같은 것들이지. 실제로 밤중에 몰래 도서관에 들어갔다가 실종된 이들이나 죽은 채로 발견된 이들도 있다고 들었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네. 하긴 마술사도 실존하는 마당에 유령이든 언데드든 불가능할 게 있겠느냐마는.”
“그 말 하면서 일부러 나 쳐다본 거지?”
그는 내 말은 무시한 채 말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실제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수도원의 도서관에 그런 게 있을 것 같지도 않거니와…… 뭐, 만약 진짜 있더라도 사특한 것에는 사특한 것으로 대응하면 되는 일이야. 일단 그 모든 것이 부풀려진 소문이라는 가정 하에, 무엇을 가장 먼저 의심하면 될까?”
“수수께끼인가! 좋아, 좋아. 아무래도 독과 향, 이겠지. 그 중에서도 환각제를. 우리의 전공이기도 하고, 자네도 양호실의 모습을 봤으니 알겠지만 이곳의 본초학은 유서가 깊어. 그 수많은 약재들 중에서 몇 가지가 도서관에 사용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적어도 내가 맡은 후로는 약재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지만 그 이전에 구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게다가 당장 이 근방에서 환각을 보게 하는 약초를 구하는 건 일도 아닐 걸.”
“그렇지. 그 쪽이 훨씬 합리적인 설명이야. 오감으로 따지자면, 시각이나 청각에는 아마 가장 기본적인 방해가 가해질 테고. 가장 위험한 쪽은 후각, 그리고 어쩌면 촉각, 미각? 노골적인 직접 섭취류는 아니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의심은 해 봐야겠지. 장갑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네. 불가능하다면 천쪼가리로 대체해도 상관은 없고. 이 정도만 준비해도 낭패를 볼 일은 없을 거야.”
“장갑은 아마 양호실을 찾아보면 있을 것 같네. 극약을 다룰 일도 있는 위치이다 보니, 한두 개는 구비되어 있겠지. 불빛은 주방의 램프나─ 아, 마술을 사용하면 바깥에서 보아도 들키지 않을 거야. 그래, 그래. 신변 보호의 문제도 그렇군. 간단한 촉매만 있다면 폭파 정도야 간단하니까!”
“이상한 방향으로 사고 튀지 말고. 그럼 내일 바로 도서관에 잠입하자. 안 그래도 요즘 감기가 돌기라도 했는지 사서들이 단체로 몸이 안 좋은 눈치라 감시가 허술할 거야. 이것도 어쩌면 신의 사랑이려나?”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만족한 듯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마치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의 소년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을 잠재우며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일과시간에 나는 계획대로 양호실에서 장갑 두 켤레를 챙겨왔습니다. 무테이는 사서들의 낌새를 예의주시했지요. 종과가 끝나고 모두가 잠들었을 한밤중에 우리는 납골당 앞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비밀통로를 통해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도서관. 그곳이야말로 이 수도원의 진정한 성역이었습니다. 수도원은 오로지 그곳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전 세계에 파견된 수사들이 수집해온 온갖 장서들이 나름의 배열체계에 따라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소실되었다고 알려진 고서들도 여럿 보였는데, 그 모습은 실로 전설 속에 등장하는 보고寶庫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보물이 있으면 그만한 위험이 앞을 가로막는 법. 암호화되어있는 배열체계는 난해했고, 미로와도 같은 구조는 복잡했으며, 곳곳에는 온갖 함정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고해성사라도 그곳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예상대로 독과 향이 잘도 사용되고 있더군요. 대비되어있지 않은 자라면 소문대로 실종되거나 죽는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히 대비되어 있었고, 나의 벗 무테이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암호학에 정평이 나 있는 이인 덕에 무사히 목숨을 부지한 채 그 보고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찾던 책들은 도서관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도 거대한 규모여서 솔직히 우리 둘 모두가 눈 앞의 광경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아마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수도원에서 이루어졌을 마술적인 연구의 영향이려니 짐작했을 따름이었지요. 그곳에는 엘릭서의 제조서를 포함하여 갖가지 연금술서며 카발라를 비롯한 밀교의 저서 등 갖가지 마술적인 내용의 장서가 모아져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흑마술서까지도 있었는데, 그쯤 되니 이 도서관을 관리해온 사서들의 집념에는 찬사를 보내고 싶더군요. 하나하나의 서적 모두가 감탄이 나올 만한 수준의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마술사들이 보았더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을 게 분명했지요.
우리 또한 당장에라도 그곳에 있는 모든 서적을 수중에 넣어서 해석하고, 연구하고 싶었지만 불청객의 위치에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으니, 구태여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곳의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애석한 마음을 뒤로한 채 가장 중요해 보이는 서적 몇 가지를 골라 방으로 가져왔습니다. 서적이 반출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마술로 눈속임을 해놓고서요.
그 후로도 무테이와 나는 계속해서 도서관에 드나들었습니다. 이 비밀스러운 행위가 반복되고 읽는 서적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점점 고대의 지혜와 신비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우리를 사로잡은 것은 그노시스 학파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단으로서의 그노시스가 아닌, 어디까지나 영지주의로서의 가르침이었지만 당신이 보기에는 그리 다르지 않겠지요. 원래도 우리는 마술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종교인으로서의 신앙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즈음부터는 우리의 의심이 신앙을 갉아먹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고백하건대 그보다 강한 것은 희열이었습니다. 우리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와 나 모두 멈출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배에 올라탄 채로 명확한 목적지조차 모르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신앙이라는 낡은 닻은 이미 내려갔고 고대의 지식과 마술이 우리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