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에 대한 소문이 들려온 것은 수도원에서 역병이 종식된 이후, 즉 내가 그를 찾아 나선지 이 년 가량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동안 유럽 전역을 휩쓸던 역병은 점점 사그라들었고 역병의 마수로 폐허가 되었던 곳들도 조금씩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마을들은 물론이고 국가나 교황청 단위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이후에도 여러 혼란이 있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행정능력이 회복된 것만으로도 상황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 덕에 그대를 비롯한 여러 수사들이 이곳 수도원으로 새로 파견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앞으로의 이야기는 당신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만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군요.
교황청과 주변 교구에서 파견된 당신들 신임 수사들이 새로이 이 수도원에 적응하는 동안 무테이와 나는 중견 수사로서 그대들을 안내하는 한편으로 수도원 내부의 대소사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무테이는 방치된 서고를 재정비하거나 역병으로 인해 중지된 수서 작업을 재개하였고 나 또한 혹시나 모를 역병의 재발이나 기타 재해에 대비해 양호실과 그 내부의 설비 및 약재들을 정비하였습니다. 그러기만도 제법 긴 시간이 걸렸지요.
그러는 동안에도 무테이와 나 사이의 소원해진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나라고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완고하게 버티는 이상 내 멋대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칫하면 그 날과 마찬가지로 우리 둘 모두가 상처만 받고 끝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나나 무테이나 그런 일이 생기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기로는 마찬가지였지요. 만일 무테이가 수도원을 떠나고자 한다면 어떤 갈등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를 이곳에 잡아두거나 그를 따르려 했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이든 그는 수도원에 남기로 결정했으니 내가 구태여 갈등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사실, 그러지 않기 위해 한사코 감정을 억누르며 노력해야 했지요.
함께가 아니더라도 연구는 꾸준히 진행됐습니다. 다만 조각의 부족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친우의 부재로 인해 진척이 더뎌진 점은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무테이의 경우 훨씬 이론적인 측면을 주로 삼는 데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으니 나보다는 상황이 나았겠지만 이마저도 어림짐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그 날 보았던 그의 연구 자료들과 서고에서 보이지 않는 비서들로 말미암아 그가 여전히 아카식 레코드에 대한 연구에 달려들고 있음을 추측할 뿐이었지요. 그는 이제 L의 연구에는 완전히 학을 떼고 자신의 연구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을 심산인 모양이었습니다.
세오도아에 대한 소문이 들려온 것은 그 해 4월경이었습니다.
전서구가 가져온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직후 내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지난 이 년간 이 날만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매일매일 달라지지 않는 나날에 절망하면서도, 이 영원할 것만 같은 제자리걸음의 연쇄를 끊는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던 것입니다.
나는 한껏 고조된 감정을 겨우 진정시키고 수도원장을 찾아가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가며 며칠간 근처의 마을에 다녀와야겠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역병 이후 서서히 고립되어 가는 수도원의 상황을 염려하고 있던 그는 몇 가지 책무를 맡긴다는 조건 하에 나의 청을 흔쾌히 승낙해주었습니다. 나는 그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 뒤 급히 방으로 돌아와 여장을 꾸리고, 다음날 동이 트자마자 수도원을 떠났습니다. 오랜 벗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무테이도 함께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우선은 전서구에 쓰인 내용대로 세오도아가 이곳에 있는 것이 사실인지를 알아보는 일이 급선무였기에 나 홀로 여정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세오도아가 그곳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들을 데리고 수도원으로 달려가 오랜만에 네 명이 모여 쌓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간의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금 앞을 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던 것도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무테이에게 이번 일을 알리지 않고, 데려가지 않기로 한 선택은 옳았으니 다행이었지요.
마을까지 도착하는 데는 말을 타고 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다다르자마자 말을 맡겨두고 온갖 골목을 뒤지며 그를 찾아다녔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습니다. 북부에 머무를 터인 그들이 왜 이곳까지 찾아온 것일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아무래도 좋으니, 그사이 어딘가로 떠나지만 않았기를. 손목에 걸쳐진 로자리오를 강하게 맞잡으며 간절하게 바랐습니다.
그렇게 헤매기를 다시 몇 시간, 그를 찾아낸 것은 마을로부터 조금 떨어져있는 버려진 항구에서였습니다. 다 낡아 스러져가는 부둣가를 거니는 한 인영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곧 그가 입고 있는 익숙한 밤색의 로브 사이로 비치는 선명한 보랏빛 머리칼이 내 두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테오도르!”
나는 무언가를 생각할 틈도 없이 기쁨과 반가움에 휩싸여 그 이름을 외치며 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는 듯 몸을 움츠리더니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심하게 경계 어린 눈빛에 부쩍 초췌해진 얼굴이었지만, 그 선명한 붉은색의 눈은, 그 보랏빛 머리칼은 분명히 세오도아였습니다.
“란기리.” 세오도아는 여전히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주춤 몸을 물렸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에 안심하는 것 같기도 했고, 되레 기겁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세상에, 이게 대체 얼마만인가! 그동안 자네를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몰라. 자네를 닮은 사람을 보았다는 얘기를 듣고 내 한달음에 달려왔다만, 나에게야 기쁜 일이지만 어쩐 일로 이곳까지 찾아온 겐가?” 세오도아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는지 내가 그에게로 다가가는 만큼 뒤로 물러났습니다. 이전부터 심약한 면이 있는 친구이긴 했지만 아까부터 시선을 어디에 제대로 두지도 못한 채로 사시나무 떨 듯 하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어딘가 이상해보이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의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잠깐 근처에라도 가 있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물었습니다. “참, 루메르트는? 당연히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자 세오도아가 고개를 치켜들며 싸늘하게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습니다. 그 반응을 보고서야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내게 말을 쏘아붙이지는 않더군요. 그저 한참동안 입술을 깨물더니 조그만 소리로 두서없는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루츠 씨는 죽었어. 삼 년 전에, 우리는 프랑스 북부의 지방에 있었는데……차라리 독일로 가야 했어. 나는 어떻게 되든 좋았는데. 적어도 그 사람의 고향으로 가야 했는데……. 거기 있던 사람들 중 나 혼자만 살아남아버렸어. 다들 좋은 사람이었어. 그곳에서 루츠는…….”
말이 이어질수록 안색이 파리해지는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해 내가 말을 끊었습니다.
“그래, 알겠어. 괜한 얘기를 꺼내서 미안하네.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어. 나도 한 명의 벗으로서 진심으로 유감을 표하네. 부디 떠나간 그와 자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 테오─”
“그 이름으로 날 부르지 마!”
멍하니 내 말을 듣는 것만 같았던 세오도아가 돌연 표정을 구기더니 비명을 지르듯 날카롭게 소리쳤습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완전히 격앙된 모습이었습니다.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고, 로브 바깥으로 드러난 양손은 울분을 채 삭히지 못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난, 난 세오도아야. 루츠는 언제나 나를 그렇게 불렀다고. 그러니 그따위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마! 아, 아아, 아! 됐어! 이제 전부 상관없어. 역시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또, 또 내가 실수한 거야. 아, 그래, 란기리. 하하, 날 찾아왔다고 했지. 결국 조각이 필요한 거지? 너희가 날 찾은 이유는 그것밖엔 없을 거 아냐. 내 말이 틀려?”
나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 틀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누구보다 소중한 벗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순간에 뒤바뀐 그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당황을 금치 못했던 탓입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그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으며 품에서 칼을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자신의 손목을 난자했습니다. 칼이 손목을 지날 때마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고 나는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오로지 쏟아져 내리는 새빨간 죽음의 빛을, 생명의 빛을, 저무는 태양을, 피를, 조각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난잡하게 어지럽혀진 정신을 다잡고 다시 고개를 들자 그는 시뻘겋게 물든 길 위에 여전히 일그러진 얼굴로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손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끔한 채였습니다. 그때 거세게 부는 바람에 로브가 벗겨지며 그의 목을 가로지르고 있는 상흔이 보였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불현듯 어떠한, 아마 몹시도 불경한 생각이 떠올랐고 나의 입은 이미 그 징표가 될 말을 속살이고 있었습니다.
“─테오, 아니, 세오. 너의 이 조각을 이용한다면, 어쩌면 루메르트도.”
“그 입 닥쳐!”
세오도아는 다시 눈을 부릅뜨며 손에 쥔 칼을 내 쪽으로 휘두르려는 듯 팔을 고쳐 쥐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 너희가 무슨 생각을 할지는 끔찍할 정도로 잘 알아. 이미 죽은 그에게 손댈 생각 하지 마. 그는 죽었어. 죽었어. 죽었다고! 비록 나도, 그도 원하던 형태는 아니었지만, 인간으로서 죽었단 말이야! 나는 그렇게 될 수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건드리는 건 절대로 용서 못해.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그게 그렇게 어려워!?”
그는 말을 멈추고도 한참을 씨근거리더니 다시 나를 노려보았습니다.
“너희와의 인연은 이걸로 끝이야. 어떻게 해서든 다시 마주친다면 죽여 버리겠어! 무테이에게도 그렇게 전해. 알겠어? 그러니까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져!”
그즈음 나는 이미 그의 태도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습니다. 대화의 여지가 남아있다면 시도라도 하려 들었겠지만 완전히 흥분한 상태의 그는 정말로 나나 자신 둘 중 하나는 기필코 죽이려 들 기세이기에 일단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겠어.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네. 이 모든 일들에 유감이야. 언젠가는 다시 이전처럼 대화할 수 있기를.”
그는 나의 마지막 인사에도 답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그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부둣가를 뒤로 한 채 떠나왔습니다. 해는 이미 저물어 가고 있었고 나는 오늘이 지나기 전에 돌아가야 했습니다. 수도원장에게서 며칠간의 유예를 받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내게 맡겼던 책무 같은 것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를 속이고 거짓을 입에 담는 것은 숨을 쉬듯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저 나는 당장에라도 수도원에 돌아가서…… 돌아가서…… 그로부터 얻어낸 조각을 정리하고 이용하여……. 아니, 사실 이유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그저 당장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의 고삐를 쥐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등불만을 길잡이 삼아 죽어라고 달렸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보았다면 분명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나를 쫓고 있는 것인지.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것인지.
그렇게 달리고서도 한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수도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밤의 수도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단 하나의 빛도 미치지 않는 그곳의 모습은 내게 어떤 감상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말에서 내려 나와 마찬가지로 지칠 대로 지친 말을 마구간에 매어두고 조각이 담긴 주머니를 챙겨 양호실로 들어갔습니다.
헌데 바깥과 마찬가지로 어둠에 잠겨있어야 할 양호실의 안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나의 손에 들려 있는 등불처럼 인위적으로 일렁이는 그 빛깔을 뒤늦게야 눈치 채고 당혹스런 마음에 발걸음을 죽였지만 그 옆에 앉아있는 자의 낯을 확인하고는 그저 아연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무테이였습니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도 내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답을 종용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에 대한 답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를 만난 이래로 언제고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묻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켜 뒤죽박죽이 된 머리는 한참을 헤매이다 가장 단순하고도 서투른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원석을 찾았네.”
토해내듯 내뱉고 나니 나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지친 목소리라, 마치 낯선 이의 목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그와 만나고 왔어. 조각을 얻어왔는데…… 루메르트는 죽었다고 해. 슬픈 일이지. 내일은 그를 위한 기도를 올려야겠어.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아, 그래도 조각은 이곳에 있어. 어때? 잘되었지? 이제 나는 계속해서 L을 만들 수 있을 거고, 자네는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술식의 연구도 마찬가지고…….”
한심하리만치 두서없는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무테이는 아무런 대꾸 없이 가만히 말을 듣더니 내가 조각을 건네자 잠시 그것을 응시하다 받아들었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우리 사이에는 잠깐 정적이 흘렀고, 곧 무테이가 몸을 일으키고 양호실을 나섰습니다. 결국 그는 나갈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창문 너머로 비치던 그의 불빛이 사라지고 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몸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비틀거리는 몸을 방금 전까지 무테이가 앉아 있던 의자에 겨우 기댔습니다. 예전에는 그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가장 편안했는데, 이제는 그와의 만남도 대화도 한시도 긴장을 놓지 말아야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무테이도 마찬가지였을까요? 그렇다면 이는 어찌나 잔인하고도 비통한 일인지요. 하지만 나의 이기적인 마음은 여전히 그를 놓을 수 없었고, 놓아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무테이와의 사이가 한순간에 회복되는 일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 날을 기점으로 서로를 드러내놓고 피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더라도 다시 그와 대화할 수 있고,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많은 상실을 겪고서도 우리들의 연구는 계속해서 진척을 보이고 있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었습니다.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많은 것이 달라졌음에도 그에 대한 한 나의 믿음은 굳건했습니다.
무테이는 다시 지하실에서 술식을 점검하기 시작했고 나도 그 자리에 종종 함께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지하실이나 서로의 방에 모여 의논을 하기도 하고 이전처럼 서고를 함께 드나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따금씩 미소를 짓기도 했고 나는 그것이 마냥 기뻤습니다. 본래 의도했던 방법은 실패했을지라도 잃어버린 지난 날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분명,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몇 차례의 계절이 지나고, 몇 번의 축일이 되돌아왔습니다. 수도원장이었던 A가 선종했고 무테이를 대신해 T가 새로운 수도원장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몇 명의 수사가 이곳 수도원에 새로이 들어와 우리들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나와 무테이의 연구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의 사건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이제 이야기도 종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