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쯤에서 잠시 마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올 필요가 있겠습니다.
세오도아와 루메르트와의 만남 이후 우리의 삶은 완전히 마술과 결합하여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세오도아는 일종의 증표였습니다. 그는 존재 자체로 우리의 가설과 접근법을 입증해주었고, 신은 그를 통해 세계의 신비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서라면 우리가 직면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택한 길에 대한 확신이 그처럼 견고했던 적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강력한 확신 하에 신의 사랑이 이끄는 대로 방향을 잡고 망설임 없이 걸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쏟아온 시간과 의지가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 우리가 택한 방법은 의학으로 대표되는 현세 중심적인 접근이었습니다. 물론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현세와 내세 모두에서 구원의 길을 걷는 것이니, 그저 내세와 현세 그 모두가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간주했을 뿐 감히 내세를 부정한다거나 내세보다도 현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허나 의학이나 마술을 통해 직접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가시적인 현세의 인간, 인간의 물리적인 측면과 달리 내세며 영적 영역에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기도라는 것에 회의를 가졌습니다. 물론 기도가 갖는 일체의 힘이나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의지는 과연 대단하지만, 신과의 소통이라는 본질적 측면에서는 어떤가요? 불경한 사상이며 말씀임을 압니다만, 신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는 이가 빈민이든 귀족이든 성직자이든 신은 듣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당신도, 나도, 지난 수 년간 살아남은 이들 모두가 그 끔찍한 사실의 목격자입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리하여 우리는 지식의 신봉자로서 끊임없이 궁구하며 실질적으로 신과 신이 만든 세상의 질서에 다가가기 위해 게으름 없이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허나 직접적인 개입의 매개체가 될 무언가가 결여된 이상은 허황된 미몽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세오도아는 바로 그 무언가였습니다. 세오도아 본인이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할지라도, 명백하게, 무심한 신은 그에게만큼은 너무나도 거대한 사랑을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의 조각마저 그 사랑을 이끌어낼 정도로요. 우리는 세오도아라는 매개체를 통해 영성에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그 조각을 통해서라면 추상을 구체로 변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들의 창조주가 그러하였듯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리라는 두려운 생각을, 우리는 감히 품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명백한 오만이었고, 이단이었지요. 인정합니다. 나는 이미 이상적인 형태로서의 신앙을 잃은 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은 바로 그 신앙이 추구하는 방향을 그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을 갉아먹어가던 의심은 이제 그 신앙과 동일한 형태로, 하지만 마술이라는 다른 방법을 통해 그 목표를 좇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영역을 통해 현세를 구원하고 신과의 합일을 추구한다는 지고한 목표를 말입니다. 특히 무테이가 택한 방법이 그러했습니다.
무테이와 내가 동일한 지향점을 갖는 마술사라 할지라도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주된 방법론의 차이라고 할까요. 무테이는 추상적인 접근법을 택했습니다. 그는 우리들의 신과 마찬가지로 창조자가 되고자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신과 세계를 인식하고 봄見으로써 세계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나아가 세계를 개변하거나 아예 새로이 창조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초월의 과정이 필요했지요. 바로 그 초월의 도구로서 사용된 것이 마술이었습니다. 그는 연금술사로서 조각을 이용한 창조-변성의 과정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신이 내린 선물gift이 피조물creature이라면 그는 피조물artifact을 만들어냈습니다. 라임과 해공의 색을 품은 아름다운 그 조각으로……. 하지만 그보다도 주가 되는 것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카발리스트로서 언어의 힘을 믿었습니다. 신의 언어를 빌려온다면 그 힘 또한 빌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요. 그렇다면 자연히, 신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듯[7] 그 창조와 힘을 재현하고 하늘의 비밀을 기술할 수도 있을 것이었습니다.
반면 나는 의학과 연금술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역에 매진하였습니다.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방식이더라도 조각이 있다면 훨씬 더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습니다. 엘릭서라고 하지요. 연금술의 결정체이자 모든 연금술사들의 꿈인 불사의 비약, 모든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다는 만병통치약. 얼핏 들으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조각을 통해서라면 이 또한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것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이 두 손으로 인간을 죽음이나 병과 같은 속박과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구원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다. 이 어찌나 달콤한 가능성이었는지요!
이렇듯 무테이와 나는 구원의 길을 걷는 데 있어 다른 방식을 택했지만 그 목적과 본질은 동일했습니다. 우리의 손 위에서 소우주와 대우주, 추상과 구체, 목적과 수단은 하나의 길 위에서 뒤섞였습니다. 극동의 개념을 빌리자면 양과 음이라고 할까요. 하나이자 둘이고, 둘이자 하나인 것 말입니다. 인도자가 있다면 기술자가 필요하고, 기술자가 있다면 그의 인도자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무테이는 인도자였고, 나는 그의 기술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무테이는 언제나 나보다도 더 거대한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보고자 했던 그는 자연히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가장 광대한 것,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손이, 육체가 땅을 향하고 있을지라도 그의 관심사는 늘 하늘을 향했습니다.
하늘, 광휘에 대한 갈망. 그것은 그에게 있어 본능적인 욕망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세오도아와의 만남이 있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무테이는 돌연 나를 한밤중의 양호실로 불러냈습니다. 서로의 방이 아닌 이상에야 비밀스럽게 접선할만한 장소는 서고 혹은 양호실밖에 없었으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겠습니다만, 그날따라 무언가 다른 기색이더군요. 아니나다를까 언제나와 같은 사소한 이야기가 지나간 후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자신의 가장 오래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꿈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누구에게나 가장 오래된 기억이 있겠지. 너는 아버지의 약제소에서 보낸 기억이 그렇다고 했던가. 나에게는 꿈이었어.” 무테이는 말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꾸던 꿈이야. 꿈속에서 나는 어둠 속에 있어. 온통 새까매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지. 심지어는 그 공간과 나 자신조차 구분할 수 없어. 절대적인 무無라는 게 있다면 바로 그런 모습일까. 그럼에도 나는 그 어둠이 마치 숲 같다는 생각을 해. 그리곤 계속 걸어가지. 걸어간다는 감각조차 없는 상태로, 당연히 시간의 흐름도 느끼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아니, 초월하면? 갑자기 강렬한 원형의 빛이 눈에 들어와. 세 번 정도. 충격에서 차츰 시각이 회복되면 온통 새하얀 장미로 둘러싸인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해. 그건 한 권의 책이야. 이 세계의 모든 일, 모든 원리를 담고 있는 단 한 권의 책. 나는 그걸 알고 있기에 당장 책에 다가가려 하지만 언제나 책을 쥐지는 못해. 늘 그 부분에서 깨어나거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마치…… 천국의 모습 같군. 라벤나에서 영면에 들었다는 그 시인이 묘사한 지고천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어.”
“그래. 하지만 그 꿈을 꾸기 시작한 건 까마득히 어릴 때의 일이야. 내가 그 책을 읽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 영향을 받았을 리도 만무해.”
“으음, 기이한 일이야. 이 또한 인도의 일부일까.”
“어린 시절에는 그저 단순한 환상이라고만 여겼어. 잊을 수도 없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지독한 환상 말이지. 예언이니 계시니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얘기일 뿐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마술이 실재함을 알고, 단테가 묘사한 천국을 보고, 무엇보다도 테오도르라는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는 그렇게 넘길 수만도 없게 되었네. 흥미로운 일이야.”
그 말을 할 때 무테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구름에 가려진 달의 희미한 빛에 의지하는 창밖의 세상은 한없이 어두워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조금 전의 꿈에 대한 설명과 겹쳐져, 마치 그가 꿈의 연장선에 서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순한 환상. 그는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어쩌면 그는 그 영상을 아주 오래 전부터 좇아왔을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를 끊임없이 나아가도록 만드는 동력은 바로 그 꿈에 있으리라고.
“테오도르도 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어. 그것은 예언일까, 계시일까. 혹은 통로일지도. 개미굴처럼 말이야.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공간이나 시간, 차원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거지. 어떻든, 만약 정말로 그곳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진정 그 한 권의 책에 세계의 모든 일이 적혀 있다면 어떨까. 그걸 통해서라면 인간의 구원과 해방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질병도, 빈곤도, 죽음도 넘어서는 일이 가능할 지도 몰라. 어쩌면 이 모든 운명마저도.”
“운명이라!”
나는 조금 놀랐습니다. 그는 종교에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면이 있었어도 신의 안배나 인도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신자들보다도 강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운명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무겁게 다가오는 말이지만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이상 그 몇 배나 되는 무게를 가졌습니다.
“아카식 레코드, 인가. 단테 알리기에리와 자네가 목격했다는 단 한 권의 책은. 아카샤Akasha는 곧 하늘이니 천국-지고천의 이미지와도 충분히 대응될 수 있겠지. 그곳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말마따나 운명을 바꾸는 일도 가능할지 모르겠네.”
“‘도달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는 건 역시 의심하는 건가?”
“그럴 리가! 자네가 하는 말이니, 의심하지 않아. 이야기의 진실성도, 도달의 가능성도.” 나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은 사람처럼 놀라서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감히 그를 의심한다니, 가당치도 않았습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가능이니 불가능이니 하는 것은 나 같은 범인凡人에게나 해당되는 개념임을. 하지만 무테이, 자네는 달라. 나와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상상하는 그대라면 그 모든 것을 뛰어넘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필시 그곳에 도달할 거야! 나는 그저 그 곁에서 자네가 바라보고 이해하는 바의 일부나마 담을 수 있기만을 바랄뿐이네. 아아, 자네도 나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정말 짓궂어.”
“의심했다 하더라도 타박하진 않았을 거야. 이전에 말했잖아. 의심도 때로는 미덕이 된다고.”
“이런. 내가 한 방 먹은 건가?” 내가 과장되게 손짓을 하자 무테이가 웃었습니다. 나도 그를 따라 웃었지요.
“허나 내가 했던 말들은 모두 진심이야. 지고천이든 아카식 레코드든 아무래도 좋아. 자네가 그곳을 향하길 원한다면 나도 그 여정에 함께하겠어. 타로의 예를 들자면─ 나는 기꺼이 그대가 만들어낼 이야기의 우자愚者가 되겠네. 부디 나를 이용하고, 인도해주기를!”
“우자라. 그 말의 무게를 알고 하는 말이겠지. 참으로 무거운 신뢰로군.”
무테이는 잠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곧 언제나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껍기도 해.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지고천을 향하기로 하자. 그곳은 나의 소망뿐 아니라 다른 모든 소망들이 이루어지는 곳이니까. 앎에 대한 욕망도, 구원에 대한 욕망도 그곳에서라면 이룰 수 있겠지. 봄visone은 이해로 이어지고, 이해는 구원으로 이어지리니. 자, 그렇다면, 란기리藍桐. 너의 인자와 나의 인자가 다르니 각자가 가장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에 매진하는 거야. 나는 하늘과 이상과 언어를.”
“─그렇다면 나는 땅과 현실, 그리고 연금술을.”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습니다.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분명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고─ 이제는 함께 새로운 세상을 향할 것이었습니다.
앞서 그노시스 학파의 서적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지요. 신이나 세계에 대한 무테이의 견해는 기본적으로 종교에 기초하고 있었지만 그 세세한 형태는 그노시스의 관점과 보다 유사했습니다. 그에게 신이란 절대적이고 완전무결한 기독교적 신의 이미지보다는 데미우르고스니 아이온이니 하는 개념들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신적 존재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로의 도달이라는 목적도 결국은 이러한 시도의 일환이었지요.
우리는 계속해서 시도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제대로 된 위치도 모르는 목적지로 끊임없이 전서구를 보내는 행위와 비슷했습니다. 조각을 이용해 부족한 인자를 보완할 수 있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존재했습니다. 이 암흑과도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카식 레코드로의 접촉을 시도하게 된 후로 무테이는 이따금씩 아쉬움을 표하는 말을 홀로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너무 빨랐어. 6세기 정도인가.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너무 이른 시대에 태어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겠지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시도에는 분명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신과 세계에 대한 이론이 갖추어져 갔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설명보다도 합리적이었습니다. 무테이는 이론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무언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그라면 분명 견신見神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느꼈습니다.
이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시간뿐이었습니다. 무테이의 아티팩트나 언어를 다루는 감각은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고 있었고, 조각에 대한 나의 연구나 연금술, 그리고 우리 둘이 힘을 합친 술식에 대한 연구도 빠르게 구색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유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리라는 믿음이요.
세오도아와 루메르트도 우리들의 연구 성과를 기꺼워했습니다. 연구를 위해 시작된 관계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의 처지가 워낙 복잡하다보니 우리들은 주로 전서구를 통해 소통했지만 몇 번인가는 두 사람이 직접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환영하며 그간 쌓인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발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오도아에게서 조각을 추출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전자는 그들에게, 후자는 우리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은 어느 때는 흥미로워했고, 어느 때는 착잡해했고, 어느 때는 기뻐했습니다. 우리로서는 원석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조각을 추출해내야 했습니다. 아, 물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요.
몇 년 동안 이어진 우리들의 만남은 언제나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수도원을 찾았을 때를 제외하고요.
마지막 만남은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수도원을 찾을 때부터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연구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각을 추출해냈습니다. 그들은 그날따라 유독 말수가 적었고 분위기에도 묘한 부분이 있었지만 모든 과정은 매끄럽게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세오도아에게서 조각의 추출이 끝났을 때 루메르트가 무겁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습니다. 그건 경고의 말이었습니다. 너희들의 그 알량한 호기심 따위로 그를 이용하지 말라더군요.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이 수도원을 찾을 일도, 너희와 연락할 일도 없을 것이라고요.
그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현실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이전처럼 와닿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들을 소중한 벗이라 여기고 있고, 그들에 대한 호의도 언제나와 같았는데 말입니다. 그래, 알겠어. 잘은 몰라도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네. 연구에 대한 열정이 과했던 모양이야. 주의할게. 나는 웃으면서 사과했지만 실상 생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무테이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멈출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루메르트와 세오도아라고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마치 제게 주어진 대사를 내뱉는 배우처럼 상대를 속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연기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애시당초 주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가라앉은 분위기는 끝내 회복되지 않은 채 두 사람이 수도원을 떠났습니다. 이전과 같은 포옹은 없었고, 수도원의 문을 넘자마자 그들과 우리 모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향했습니다.
많은 생각들이 어지럽게 뒤섞였습니다. 그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정말로 다시는 만나볼 수 없을지에 대한 생각. 조각의 복제에는 이미 성공했으니 괜찮다는 생각. 우리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고, 다시 기회가 있으리라는 생각.
그때 우리에게는 끝에 대한 감각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미래는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었고 만회의 기회 또한 주어질 것이었습니다. 이제와 떠올려보면 몇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수도원에서의 삶과 견고한 수도원의 모습이 이러한 감각을 더해주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그 모든 것은 산산이 무너져 무無로 돌아갔습니다.
그해 10월, 남부의 항구에서 지독한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