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 ― 末

1■.

몇 달 전, 새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어느 날 밤 무테이가 나의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관계가 제법 회복된 뒤에도 서로의 방을 드나드는 일은, 특히 그가 내 방을 찾는 일은 상당히 드물었기에 나는 여느 때보다도 그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내 방에 들어선 그는 의자에 앉으라는 나의 권유에도 잠시 뜸을 들이더니 품에서 종이뭉치 한아름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고는 한 번 읽어보라는 양 눈짓을 보내더군요. 나는 의아했지만 천천히 그것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익은 글자와 문양들이 이어지며 익숙한 내용이 전개되는가 싶었지만 점차 처음 보는 문장들이 늘어나더니 종내에는 몹시도 복잡하고 정교한 마법의 술식으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의 경지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지만 그것은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았지요.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산물들 중에서도 이토록 치밀하고 아름다운 산물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건…….”

“아카식 레코드에 접근하기 위한 술식이야.”

여전히 종이뭉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나는 놀라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노력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고 술식의 특성상 난점으로 가득하지만 충분한 시간 동안 공을 들인다면, 그리고 조각을 촉매로 사용한다면 분명 가능할 거야.”

“굉장하군! 결국 성공한 건가? 정말 잘 됐어!”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하고 진심어린 탄성을 내질렀지만 그는 옅은 미소로 답하면서도 어쩐지 묘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분명히 평소와는 달랐고, 그때는 그 이질감을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웠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은……괴리감에 가까운 기분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내가 그런 주관적인 감각에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손에 들린 것의 광휘가 너무도 눈부셨습니다.

“이 술식은 혼자서는 실행시킬 수 없어. 내가 주 시술자가 될 테니 자네는 보조를 해줘. 성공한다면 자네도 그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거야.”

그 말이 어찌나 감미롭게 들리던지! 나는 그가 우리들의 이상을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는데, 이제 그가 아니면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차원의 역작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실제로 행하기 위해 나를 필요로 한다니요! 내가 그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나는 기쁨에 겨워 그의 두 손을 잡고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야! 물론이고말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준비할 수 있어. 이 목숨이라도 바치겠네! 그러니 자네는 아무 염려도 하지 말게나.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벽히 행할 테니.”

그는 여즉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었습니다.

우리들은 곧바로 문제의 술식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나나 무테이 모두 하루라도 빨리 술식을 행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걸 준비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습니다. 그와 나는 한참의 대화 끝에 적어도 반년의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판단했고, 이를 기반으로 하나하나 계획을 수립해나갔습니다.

먼저 술식을 시행할 위치는 예배당 아래의 지하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시는 ─신학은 물론 점성술 등의 분야까지 전부 고려하여─ 오랜 고심 끝에 지금 내가 당신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는 오늘로부터 이 주일 전의 자정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모든 시간의 끝, 모든 시간의 시작! 비록 조과까지의 간격이 2시간밖에 되지 않아 시간이 촉박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진실로 세상의 끝이자 시작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깟 시간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지난 반년간의 시간은 꿈과도 같이 지나갔습니다. 밤낮없이 빠듯한 수도원의 일과와 더불어 술식의 실행을 위한 준비에도 온힘을 다해야만 했지만 어떠한 피로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듯했습니다. 조각을 연마하고, 그와 이야기하고, 이론을 재검토하고, 함께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바라보고. 그런 나날이 이어지며 이번에야말로 진정 빛에, 하늘에 닿을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 때와는 달리 이번에야말로 질병도, 피도, 슬픔도, 죽음도 없이 수십 년 전의 그 시절로 돌아갔노라고요.

완전히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노라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보다도 더한 흥분감과 환희가 나를 감쌌습니다. 처음 그의 손을 잡고 서고로 들어갔을 때처럼, 죽음의 공포를 딛고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던 그 날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는 다시 나의 손을 잡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궁으로 나아가 그 앞을 밝혀줄 것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무엇이나 있고, 무엇도 없겠지요.

모든 지혜를 깨달은 현자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까요? 나는 그것이 참으로 궁금했고, 여전히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무테이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곤 했습니다. 어째서 라플라스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어째서 악마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말을 따르면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따라서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설명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더군요. 만약 그 악마의 눈을 가지게 된다면 과연 유약한 인간의 정신은 버텨낼 수 있을까요?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이가 불가능하더라도 무테이라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요. 세오도아와 마찬가지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곁에 머물고 있었던 나는 절절히 느낄 수 있었지요. 그 무렵의 무테이는 마치 구도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야말로 마땅히 가장 높은 하늘로 도달하여 나를 구원하고 모든 인류를 구원할 구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무섭도록 빠르게 흘러 실행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저물어가는 해가 하늘로부터 빛을 끌어내려 밤의 베일이 수도원에 드리워지자 무테이와 나는 모든 형제들이 잠에 든 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여기 예배당에 들어섰습니다. 우리들의 발소리가 이곳을 지키는 무거운 고요를 깨뜨리며 예배당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역병 시기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장소였지만 그 날은 그곳에 들어서는 행위부터가 어딘가 의식마냥 엄숙한 데가 있어 나도, 무테이도 누구 하나 쉬이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등불을 들고 앞장서서 내려가는 무테이의 뒤를 따르며 혹시나의 경우를 대비한 마술을 이곳에 걸어두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외부와 차단하는 마술이었습니다. 마술을 제대로 실행하기도 전에 방해를 받아서는 안될테니 말입니다.

“분명 모든 게 잘 될 거야.”

그리고는 호언장담했지요. 분명 지난 시일 동안 우리는 완벽한 술식을 만들어냈고, 실패의 가능성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준비에도 흠결이라고는 없었고요. 나를 앞서 걸어가는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분명 무테이도 실패를 예상하지는 않는 눈치였습니다. 단지 벌써부터 기쁨에 취해있는 나와는 달리 성공을 직감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절제된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그조차도 그에게 부여된 덕성의 일부이리라고 짐작할 따름이었습니다.

지하실에 다다른 우리는 준비한 그대로를 실행했습니다. 마술의 촉매가 될 조각을 준비하고, 시술자인 무테이의 피를 희석한 액체로 술식의 매개가 될 진陳을 바닥에 그렸습니다. 그리고는 탁상에 함께 걸터앉아 자정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남은 시간이 무정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습니다. 꿈의 실현을 앞둔 우리 두 사람이 충만한 기대감을 만끽하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마련해주었으니까요.

우리들은 그곳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치 지금이 아니라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는 사람 같았지요. 인지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꿈이 실현된 이후의 우리와 그 이전의 우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일 것만 같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 이전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처음의 그 시절─정말로 순수하게 꿈을 꾸며 저 높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던 그 나날처럼. 아, 이십여 년, 반평생의 세월을 거쳐 돌고 돌아 그 꿈의 실현을 목전에 두고서야 우리는 진정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찰나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 순간이 계속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정은 다가왔습니다. 우리들은 몇 번이고 연습했던 대로 예정된 자리에 서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테이는 그와 동시에 진陳의 가까이 다가가 술식의 마지막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식을 외는 술자의 팔을 칼이 가르고 지나가고, 그 상처를 비집고 나오는 피가 진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그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완벽했고, 술식은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無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눈앞에 두고도 내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테이는─ 그걸 본 순간 그는 바로 깨달았을 겁니다. 우리가 무슨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

그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처음 느꼈을 때 바로 그만두었더라면. 그랬다면 신체 한두 부위가 찢겨나가는 것만으로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사를 결정할 그 찰나 간 눈을 커다랗게 뜨며 똑바로 그곳을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내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시술자 본인이 멈추려 들지 않는 이상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무테이, 무슨 짓이야, 제발 멈춰! 나는 소리를 지르며 당장 그를 밀치려 했지만 채 손이 닿기도 전에 어딘가에서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어왔습니다.

순간 시야가 명멸하고 지독한 어지러움과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한순간 끊어졌던 의식이 되돌아오자 차갑고 딱딱한 나무바닥이 느껴졌습니다. 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뜨겁고 축축한 것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분명 신체 어딘가가, 아마도 머리가? 손상되었을 것이 확실했지만 그 무엇도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 또 다른 이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무테이 나의 벗 어디에 있지? 귀를 가득 메우는 이명 탓인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반쯤 가려진 흐릿한 시야가 무언가를 겨우 찾아내었습니다. 허나 그것은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틈새였습니다. 아니, 아니, 그것은 그가 맞았습니다. 그는 찢겨나가고 있었습니다.

충격으로 멍해진 머리는 여전히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찢겨나가는 인간의 육신이 사랑하는 벗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규칙한 뼈와 살과 피의 소용돌이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몹시도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단 한순간도 눈에서 떼지 않았던 모습이. 아름다운 글씨를 쓰던 그의 손이, 팔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던 그의 얼굴이, 언제나 또렷하게 목표를 직시하던 눈이, 피가, 살이, 뼈가,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져갔습니다. 흐릿하던 시야가 또렷해지고 귀를 메우던 이명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나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아, 안 돼. 안 돼.

나의 입에서는 미처 문장이 되지 못한 말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일부라도, 일부라도 좋으니 그를 잡아두고 싶었습니다. 나의 육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습니다. 차라리 그것을 바쳐서라도 그를 구해낼 수 있었더라면 망설임 없이 바쳤을 것입니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그에게로 다가갔습니다. 허나 이번에도 손은 닿지 못했습니다. 재차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야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나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제물조차도 되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끔찍한 무력감과 고통 속에서 틈새가 닫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아아, 아아아. 누구의 비명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원하지 않았던 형태로 모든 것이 실현되어버렸습니다.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사라져버렸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아아, 하다못해 그의 잔해라도 수습할 수 있었더라면! 하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는 역겨울 정도로 익숙해진 피비린내뿐이었습니다. 그의 것이라고는 핏자국마저도 남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접촉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벽에 반쯤 기댄 채로 바닥에 쓰러져있었습니다. 흐릿한 정신 속에서도 찢겨나간 팔과 손상된 머리가 재생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L의 영향이겠지요. 끔찍한 감각이었습니다. 뜨거운 것이 계속해서 뺨을 적시고 있었지만 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홀로 남은 나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동시에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염없이, 이제는 닫혀버린 그 틈새가 있던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셔 몸이 떨려올 때까지 그 상태로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처절한 고통뿐이었지만 증오스럽게도 사고는 재개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하더군요. 다시금 종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가장하고, 그리고,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내가 행동해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신앙은 저버린지 오래였습니다. 마술의 피는 나를 배반했습니다. 친족들도, 벗도 전부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감히 품어보았던 꿈은 악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저 의미 없는 이 생生만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비정한 시간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조과를 알리는 종소리가 외벽을 비집고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뎅, 뎅……. 진이 다 빠진 몸은 비척거리며 일어서 지하실을 빠져나갔습니다. 그의 피로 가득한 이 공간을, 역겨운 피의 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거두어지지 않은 어둠에 몸을 감추고 욕탕으로 도망치듯 달려갔습니다.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묻어나올 때까지 몸을 닦았습니다. 몇 번이고 닦아도 씻겨지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 냄새도, 피도, 죄악도, 기억도. 배어나오던 피가 순식간에 멎어들고 상처가 아무는 모습도 끔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나는 물속에 잠겨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이 우둔한 자는 당장 돌아갈 곳조차도 찾지 못했습니다. 나의 방에도, 양호실에도, 이 수도원의 모든 곳에 그의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내가 존재했던 모든 곳에, 내가 기억하는 모든 곳에 그가 있었습니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그대로 바깥으로 나와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둠이 개고 빛이 다시 발하더라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태양은 한없이 영원한 것이므로…… 그것이 나를 불태운다면 차라리 기껍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한참을 있기를 다시 한 번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찬과를 알리는 종소리.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점차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예배당으로 향하는 사제들의 무리에 끼어 다시 이곳에 들어섰습니다. 여전히 흐릿한 어둠이 예배당을 감싸고 제단 위의 촛불만이 빛을 밝혀주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광막한 어둠 속에 제 광채를 잃은 듯 몸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무리의 마지막에 있던 내가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문이 닫히고 곧 기도와 찬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지금껏 너무나도 익숙하게 행했던 그 모든 것들. 그 음색들이 그렇게나 끔찍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나의 귀에는 여전히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분명 사라졌을 터인 지하의 피냄새가 새어나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형제들이 중간중간 내 쪽을 흘낏 쳐다보기에 나는 최대한 아무런 일도 없었던 척 표정을 꾸며내야만 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사제들은 내게로 다가와 미사에 참석하지 않은 무테이의 행방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지 물어왔습니다. 당신도 그 중 한명이었지요. 그와 내가 원래부터 친밀했고, 최근에는 언제나 함께 다니다시피 했으므로 그대들의 행동은 지당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어라 답할 수 있었을까요? 이 바로 아래의 지하실에서 몸이 찢겨져 죽었노라고? 그래서 시신조차 남지 않았노라고?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낯을 꾸며내어 거짓을 입에 담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폐쇄된 수도원에서, 게다가 무테이만한 인물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에 그대들은 의아해하며 그의 방으로 찾아갔지요. 당연하게도 그는 그곳에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내가 한 번 그를 찾아보겠노라고 이야기하고 본관을 나서자 다른 수사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합세하였지요. 그날은 우리 모두가 종일 무테이를 찾아다녔습니다. 수도원의 오랜 역사와 비밀을 알고 있는 일부 수사들은 도서관과 연관된 통로나 미로를 의심하며 무테이의 지도를 받던 보조 사서를 그곳으로 보냈지만, 그곳에서라고 그가 발견될 리가요!

몇 시간 동안의 수색에도 전혀 진전이 없자 하나둘 비관적인 의견이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가 수도원에서 도망치거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리는 결단코 없노라고 변호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날의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일단락되었지요.

하지만 나의 진정한 공포와 고통은 그 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자정의 기억이 내게 한시도 평안을 허락하지 않고 괴롭혔습니다. 아, 나는 한낱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존재의 일면을 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 끔찍함, 그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란! 미물의 의사 따위는 개의치 않겠다는 듯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소멸시키는 그 영겁의 굴레, 한없는 공간의 틈새가 이 세계의 한 꺼풀 위에 상존하고 있었습니다. 감히 모든 것을 알고자 했던 우리는 얼마나 무지했고 그렇기에 용감했던가요. 그 실체를 일별한 것만으로도 나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매일 밤 한숨도 잠들지 못하고 침대보를 쥐어 잡은 채 간신히 비명을 억눌렀습니다.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누군가와 함께 있으나 홀로 있으나 태양 아래 서 있으나 어둠에 감싸여 있으나 나는 여전히 무간無間의 지옥 속에 있었습니다. 여태 읽은 지옥에 대한 어떤 묘사도 그 며칠간의 고통에 필적하지 못했습니다.

환청과 환시가 내 몸과 정신을 물어뜯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날 밤에 멈춰서있었습니다. 그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 오로지 그뿐이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음성도, 악마의 속삭임도, 무테이의 목소리도. 나는 무릎 꿇고 빌었습니다. 셋 중 누구를 향한 기도였는지는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오니 제발 내게서 빼앗아간 것들을 돌려달라고, 그리 빌었던 것 같습니다.

무테이의 의문스러운 실종 이후로 일주일이 지나자 그가 어떤 방향으로든 죽음을 맞이했으리라는 의견이 힘을 얻었습니다. 나도 그 흐름에 동조했고요. 그것을 과연 죽음이라는 간단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내심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회의를 느꼈지만 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현세의 사건은 종결되어야 했습니다. 일단 결론이 내려지자 사자死者를 위한 모든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다시금 침통한 심정으로 예배당에 모여 떠나간 나의 형제, 나의 벗을 위해 망자를 위한 기도와 장송곡을 바쳤지요.

주여,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내리소서, 사라지지 않는 빛을 비추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주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예식이 끝난 뒤에도 나는 한참동안 예배당에 남아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를 위한 기도를 올리고 있노라면 나를 괴롭히는 그 끔찍한 환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주여,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주소서.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영원한 안식, 영원한 빛.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것을 그가 손에 쥘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겠노라고.

분명 그 간절함이 그에게, 하늘에 닿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나는 온몸을 내달리는 극심한 고통과 공포를 이겨내고 일주일 전의 사건을 되짚어보고자 서고로 향했습니다. 그때 실행했던 술식과 그 결과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났던 허무, 그것의 정체에 대해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옷을 고쳐 입고 천천히 본관을 빠져나와 납골당 쪽으로 걸어가던 중,

나는 무테이를 보았습니다.

믿을 수 없겠지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며 그가 있는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내 눈앞에서, 이 세계에서 사라졌을 터인데, 그렇다면 저 앞에 서 있는 그는 누구지? 그는 지금껏 나를 괴롭히던 환시와는 명확히 달랐습니다. 아니,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어떤 모습과도 달랐습니다. 그에게는 어떠한 색도 허락되지 않는 듯 무채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은자隱者를 연상시키는 새하얀 로브를 입은 채였습니다.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지도 않고 한 곳만을 또렷하게 응시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수도원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젊고 아름다웠습니다.

그제야 나는 내 마음 속을 어지럽히던 의문점과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고 내 육신과 정신을 옥죄이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건네주었던 이야기들에 모든 답이 있었습니다. 그는 역시 구도자이자 선지자였던 게지요! 우리가 아직 젊었을 시절, 그가 아주 오래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지요. 절대적인 무無를 초월한 곳에 존재하는 단 한 권의 책, 아카식 레코드. 그는 그곳에 접근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래요, 우리들의 마술은 분명 완벽했습니다. 우리들의 마술은 애초부터 실패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신의 사랑을 받고 그로부터 보호받는 자.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이 세계에 화化한 존재. 무테이无諦는 그저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진정한 무无이자 개념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방해가 되는 인간의 육신을 벗어던진 것뿐이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던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환희가 가슴을 불태우며 두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습니다. 나는 한 꺼풀 위의 세계에 존재하는 그를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영원한 생명을 거머쥔 그가 다시금 육신을 얻고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 구원을 가져오리라는 사실을!

그러니 말이야, 나는 이곳에 남아있기로 했네.

그의 의지를 이어야 하니까, 언젠가 다시금 형태를 가지고 돌아올 그를 기다려야 하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어. 기다림에는 익숙하거든. 하지만 그걸 위해선 이제 와 그의 이름을 더럽히거나 나의 입지를 위협하는 자는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단 말이야. 사흘 전에 실종된 J는 자네와 동문이었던가? 그는 무테이의 실종에 의구심을 품었는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다가 그가 남긴 기록물을 발견해버렸더군. 그 양피지에 쓰인 내용은 물론 몹시도 정교하고 아름다웠으나 성격상 들킨다면 당장에 심문당할 만한 것이었지. 아아, 내가 치밀하지 못했어. 전말을 들었으니 이제 자네도 이해하겠지만 그간은 정말 정신이 없었거든……. 그러나 이미 일어나버린 일. 어떻게든 수습해야만 했어!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좀 파악이 되나? 나도 가슴이 아팠다네. 그가 무테이를 깊이 존경했다는 사실은 알아. 끝까지 그의 죽음에 매달릴 만큼 신실했던 자였으니, 그 마음을 절절하게 이해하는 자로서 비통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그의 육신은 영영 찾을 길이 없을 거야. 그도 무가 되었으니. 물론 인자가 결여된 그는 무테이와 같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겠지만.

J를 주님의 곁으로 인도하고 나니 연이은 수도사들의 실종으로 교구에서도 심상찮은 기색을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더군. 아마 곧 조사관들이 찾아오겠지. 얼마 남지도 않은 이단 심문관 출신이라던가. 어쩌면 자네의 동료인가? 문제는 없어. 이제는 전부 안전하게 정리했으니.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알아버린 거야. 마지막으로 내게 남은 위협을. 어젯밤 마지막으로 지하실에 남은 모든 것을 말소하고 그 문을 봉쇄하기 전, 자네가 이미 그 문을 열어버렸다는 걸!

―아! 하하! 무엇을 바라고 고해소에서 뛰쳐나왔지!? 자네가 도망칠 길은 없어! 이 정도로 꽁무니를 뺄 거라면 왜 성사를 집전해주겠다고 했나? 그 며칠간 자네도 이곳저곳을 들쑤시면서 내가 이 사건과 연관되어있으리라고 충분히 예상했을 것 아닌가. 모든 것을 듣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알았나? 감히!

이런, 배교자의 앞에서 바닥을 기는 꼴을 보이다니. 어지간히 도망치고 싶은 모양인데, 헛된 희망은 버리는 게 좋아. 이 수도원에서 지금 깨어있는 자는 아무도 없어. 아, 오해하진 말게. 말 그대로 잠들어있을 뿐이야. 죽음의 은유가 아니라고. 하지만 네가 도망치려 든다면 그 또한 못할 일도 아니지! 이 모든 게 폐허가 된다 하더라도 나는 상관없어. 남아있기만 한다면! 게다가 설사 깨어있는 이가 존재한다 해도 어쩔 텐가? 청색병이 종식된 날 그들이 나를 찾아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나를 위해 부역하겠다는 말이었어. 내가 배교자이고, 그대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끝낼 수 있단 말이야. 아, 내가 잘못 말했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이라니.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렇지?

자아, 진정하고 들어보게. 크게 숨을 들이쉬어 봐. 옳지. 자네는 이 늙은이의 고해를 들어주고자 온 게 아니던가? 주님 앞에 한 점 부끄럼 없도록, 마지막까지 자네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야지, 그래.

나는 말이야, 그로 인해 눈을 뜨게 된 이후로 이곳의 많은 것에 실망했다네. 지성의 보고를 자칭하면서도 어찌 이리도 아둔한가. 자신들의 틈에 선지자가 섞여있는데도, 심지어는 그토록 좇는 천사의 형상이 머잖은 곳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한 자들에게 구원이 있을쏘냐! 아이러니한 일이지. 이단자의 마술을 손에 쥔 우리만이 그를 알아볼 수 있었으니. 자신의 무지함을 탓하도록 해. 아니면 선택받지 못한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든가. 이미 타성에 젖을 대로 젖은 너희들의 신앙이란 그런 것 아닌가. 모든 건 무소부재하며 전능하신 신의 뜻이라고……!

어라, 왜 그런 표정을 짓지? 죽음이 두려운가? 걱정하지 말게. 모든 건 한 순간일 거야. 육신조차 남지 않으니 이단자의 손에 농락당할 일도 없고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최후의 심판 때는 주님께서 어련히 자네를 위한 새로운 육신을 준비해 주시겠지. 그게 아니라면, 죽음 앞에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가? 이런! 나는 그리 냉정한 사람은 아니야. 자네가 얼마나 신실한 이인지 나도 잘 알지. 자네처럼 고해성사는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종부성사는 집전해줄 수 있어. 봐. 로자리오도 여기 제대로 있는걸. 그래, 그래…… 주님,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우리 형제를 도와주소서. 형제의 모든 죄를 용서하소서. 아아, 마땅히 그대에게 부어줘야 할 성유가 저 멀리에 있으니 어쩌면 좋을까. 안타깝지만 부디 이해해주길 바라. 또한 이 자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 주소서…….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기를 바라옵나이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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